버저비터

2021년 2월 <시대의 사랑> 수록

by 권혜린



눈앞이 온통 어둠이었다. 스크린의 윤곽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았다. 퀴즈쇼가 진행되었어야 할 무대는 고요했다. 녹화장을 뒤덮은 포그 머신의 연기를 보자 모두 비상구로 달려갔다. 무대로 뻗어 나가야 할 환호성 대신 비명이 주위를 휩쓸었다. 공간을 많이 쓰기도 했다. 팔을 허우적거리고 보폭은 평소보다 커졌다. 누군가가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와 김은형은 벽에 몸을 붙였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전기가 차단된 모양이었다. 조명이 가득했던 무대보다 지금이 아름다웠다. 우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비어 있는 무대와 방청석은 검푸른 새벽이었다. 김은형은 휴대폰으로 하이든의 제45번 교향곡 <고별>을 틀었다. 음악은 4악장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어둠을 찍었다. 웃으면서 보내 주는 게 낫다. 단원들이 퇴장하는 퍼포먼스로 휴가를 얻어 냈던 하이든식 유머가 필요했다. 현지수는 끝나지 않을 긴 휴가를 얻은 것뿐이다. 보면대 위에 있던 촛불을 끄고 퇴장했던 단원들처럼 현지수의 촛불을 꺼 주었다. 모두에게 휴가를!


우주까지 충분히 갔을 시간이지?


김은형이 웃으며 하는 말에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어둠을 상영하니 좋다.






장학민 님 맞으세요? 십 년 전에 퀴즈쇼에 함께 나갔던 김은형이라고 하는데요. 퀴즈쇼에 함께 나갔던 사람들끼리 모일 일이 생겨서요.


퀴즈쇼 출신자들의 모임인가 싶었다. 모임 이름이 획수가 많은 한자로 되어 있고 장학회 이름과 비슷했다는 것만 기억났다.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만큼 구겨진 목소리가 나왔다.


나가고 싶지 않은데요.

나오셔야 해요. 음, 그러니까, 함께 즐거운 책임을 지기 위해서요.

이상한 말이네요. 어떤 책임을 말하는 거예요?

……현지수가 죽었어요.


머리가 멍해졌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우리가 나갔던 퀴즈쇼의 우승자였다.


대기실에서 우리끼리 했던 말 기억나세요? 퀴즈쇼가 끝나고 말이에요.

……다음에는 꼭 버저를 성공적으로 누르자고 했었지요.


퀴즈쇼의 마지막 라운드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현지수의 독무대였다. 어렸을 때부터 국제 수학,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삼 년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고 외국 퀴즈쇼에도 한국 대표로 나갔으니 국내 퀴즈쇼는 쉬웠을 터였다. 문제의 반도 듣기 전에 버저를 눌러 정답을 말했다. 현지수의 전광판에서 숫자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올라갔다. 버저를 눌러 오답이라도 말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었던 게 기억났다.


전화를 끊고 검색 사이트에 들어갔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이름이 있었다. 네 개의 퀴즈쇼에서 모두 우승했던 천재가 세기말에 세상을 떠나다니. 현지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내년 봄에 방영된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피디인 현지은, 현지수의 언니가 나섰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고통스러워도, 버저를 계속 눌러야 합니다. 그걸 보자마자 현지은이 친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자매이거나. 나는 현지수의 틈을 잠깐 엿보았었다. 현지수는 버저를 계속 눌렀기 때문에 사라진 거였다.






무대에는 단상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사회자는 출연자들의 무대와 긴 다리로 연결된 작은 무대에 섰다. 나는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였다. 단상 가운데에 박혀 있는 전광판에는 기본 점수 백 점이 찍혀 있었다. 버저를 눌러 보라는 스태프의 말에 앞에 놓인 버저를 눌렀다.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버저였다. 손가락 네 개를 동시에 올려놓고 힘을 주었다. 내 버저가 가장 먼저 소리를 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제일 끝에 있는 참가자의 얼굴을 보았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현지수였다.


퀴즈쇼에서 피에로 같은 미소나마 끝까지 유지한 사람은 현지수뿐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기본 점수를 웃도는 점수처럼 울상이었다. 플래카드를 들고 나를 응원하러 왔던 엄마와 오빠는 고개를 숙였다. 플래카드는 뒤집힌 채 바닥에 놓여 있었다. 회절, 키부츠, 칸딘스키, 환난상휼, 보데의 법칙 같은 말이 현지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가 누구인지 묻는 쉬운 질문에도 버저를 누르지 못했다. 모파상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무대라는 우주에서 튕겨 나간 별이었다. 내가 없는 우주가 훨씬 완벽해 보였다. 그때, 무대 위로 목소리 하나가 떨어졌다. 농구공을 떨어뜨리듯 둔탁한 목소리였다.


퀴즈쇼는 끔찍해.






김은형이 말해 준 술집은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버저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퀴즈쇼에서 실패한 뒤로 버스든, 음식점에서든 버저를 누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있는 작은 비상용 버저도 보기 싫어서 계단으로만 다녔다. 내가 버저를 누를 차례에 버저가 발이 달려 도망가거나 사라지는 꿈도 자주 꾸었다.


가렌을 젖힌 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머리에 띠를 두른 직원들이 이랏샤이마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에서는 마찬가지로 머리띠를 한 직원이 꼬치를 굽고 있었다. 김은형이 구석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한 명은 취업 스터디 때문에 못 나온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유학 중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뭐가 진짜로 중요한지 몰라. 김은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바로 말을 놓았다. 김은형은 꼬치와 사케를 시킨 뒤 본론부터 말했다.

퀴즈쇼 이후로 잘 살고 있어?

나는 기본 안주로 나온 호박찜만 우물거렸다. 김은형이 다시 말했다.

계속 답답했어. 명치에 뭐가 걸린 것처럼. 더 시시해지기 전에 뭔가 저질러 보려고.

위험해지고 싶지 않아.

그럼 왜 나왔어?

그냥, 허탈해서.


그러니까, 나는 조금쯤 우울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문했던 꼬치와 사케가 들어왔다. 김은형이 사케 한 모금을 마신 뒤 말을 이었다.


현지수는 폭주 기관차처럼 모든 퀴즈쇼에 나가더니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블로그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나에게 쪽지를 보냈더라고. 이렇게 또 나를 추월해 버릴 줄이야.

김은형은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접시에 놓여 있는 꼬치들이 젖은 장작처럼 보였다.

다큐멘터리 제목 봤지? 날개를 펴지 못한 천재를 애도하는 그렇고 그런 방식.

그래서? 그래서 뭘 할 건데?

현지수를 기쁘게 떠나보낼 거야. 새로운 버저를 누르는 거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버티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피곤하다구.


그러자 김은형이 아주 천천히, 한 단어씩 끊어 가며 말했다.

현지수가 암호를 보냈어. 다큐멘터리가 완성되기 전에 먼저 찾아야 해. 그가 보낸 버저를.


현지수는 김은형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버저를 눌러 달라고 했다. 버저라고 하면 손가락으로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일 텐데 이상했다. 김은형은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종이 뭉치를 주었다. 현지은이 블로그에 올린 다큐멘터리 제작 일지를 출력한 거였다. 마지막 장에는 연말에 현지수를 추모하는 퀴즈쇼가 열린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퀴즈쇼 아이디어를 시민 공모로 진행한다고 했다. 김은형은 이 공모전을 같이 준비하자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퀴즈쇼 영상에서 우승자를 발표하는 장면부터 재생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장에서 꽃가루가 떨어졌다. 금박과 은박이 섞인 꽃가루가 머리와 어깨 위에 달라붙었다. 떼어 내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 참았다. 양쪽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현지수를 보았다. 여전히 같은 미소를 띠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승 소감을 말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현지수가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퀴즈쇼에서는, 이기는 것도 지는 거야.


방청석이 술렁였다. 카메라맨들이 렌즈에서 눈을 뗐다. 사회자가 현지수를 손가락질하며 말을 더듬었다. 피디도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현지은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모르게 버저를 눌렀다. 화난 피디는 녹화를 중지했다. 현은민의 어머니는 비틀거리며 피디에게 다가갔다. 그때 현지수가 말했다.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녹화가 다시 시작되자 현지수는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상금은 이 퀴즈쇼에 기부하고자 합니다. 제가 목숨을 기부하는 날이 오게 되면 이 기부금이 좋은 일에 쓰일 수 있길 바랍니다.






상수역 근처의 카페에서 김은형을 다시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은형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하이든의 제45번 교향곡 <고별>이었다. 삼 분이 지나면서 멜로디가 느려졌다. 4악장에서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를 끝마친 뒤 하나둘씩 무대에서 퇴장했다. 지휘자까지 퇴장해 버렸다.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며 곡이 끝났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김은형은 말이 없었다. 나는 저번에 받았던 종이를 꺼내면서 말했다.

현지은은 현지수의 우승 소감을 기억하고 이걸 기획한 거겠지?


이제야 김은형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고별 교향곡 형식의 퀴즈쇼를 만드는 것이다. 나와 김은형은 머리를 맞대고 공모전 기획서를 썼다. 며칠 뒤에 현지은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지은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가 제대로 퇴장할 수 있겠네요, 이 세계에서.






다시 퀴즈쇼의 단상에 섰다. 참가 신청을 받아 뽑힌 두 명의 참가자도 함께 섰다. 현지수의 자리에는 현지은이 올라왔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현지은이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맨도 맨 앞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퀴즈쇼가 어떤 아이디어로 꾸며졌는지는 녹화가 끝난 뒤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1라운드는 모두 쉽게 통과했다. 탈락자가 없는 라운드였다. 십 년 만에 버저를 눌러 보았다. 생각보다 쉬웠다. 사회자가 2라운드로 넘어간다고 할 때였다. 김은형이 무대에서 퇴장했다. 손까지 흔드는 모습이 여유 있어 보였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나는 3라운드가 시작한 뒤 첫 번째 문제가 끝나자마자 나가기로 했다. 5라운드까지 끝나고 마지막에 현지은이 남게 되면 화면에 현지수의 영상이 나오면서 현지은이 추도사를 읽기로 되어 있었다. 우승자 없는 퀴즈쇼였다.


내가 나갈 순서가 되었다. 무대 오른쪽에 있는 통로로 빠져나왔다. 패턴을 알게 된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입구에 서 있던 김은형이 손을 들어 나를 반겼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포그 머신을 들고 있었다. 포그 머신이 충분히 예열되었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별>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바이올린 연주자들처럼. 현지은에게는 보내지 않았던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추도사가 시작되기 전에 퀴즈쇼라는 무대를 끝낼 차례였다.


김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신호였다. 김은형이 포그 머신의 손잡이를 쥐고 앞섰다. 나는 손에 무선 리모컨을 들었다. 김은형이 입구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 리모컨에 있는 붉은색 버저를 세게 눌렀다. 버저만큼 새빨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불이야!


포그 머신에서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금세 녹화장을 채웠다. 나만 녹화장 안으로 더 들어갔다. 김은형은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김은형을 보았다. 김은형이 포그 머신을 두 손으로 잡고 번쩍 들었다. 한 번 더, 하고 외치고 있었다.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농구공을 골대에 넣는 동작처럼 리모컨을 든 팔을 위로 치켜든 채로. 공중에 뜨자마자 붉은색 버저를 있는 힘껏 세게 눌렀다.


마지막 퀴즈쇼의 버저비터였다.



<끝>




* 독립출판물 <시대의 사랑 시즌 2>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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