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주웠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면은 마스크 팩처럼 눈과 입 부분이 뚫려 있고 온통 하얀색이었다. 생각보다 딱딱했다. 석고로 만든 것 같았다. 가면을 줍자마자 무심코 얼굴에 갖다 댔다. 주운 것을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는 어린아이처럼. 스티커가 종이에 붙듯이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달라붙은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름이 돋았다. 가면이 피부가 된 것 같았다. 가면의 오른쪽 끝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끝부분이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옷 가게의 창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가면은 누구나 알 법한 연예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인형 씨를 닮았네요.
교통사고로 돌연사한 스물일곱 살 청년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돌연사. 돌연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돌돌돌,
머리가 어지러웠다. 햇볕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일지도 몰랐다. 전광판에는 붉은색 글씨로 고인의 이름이 떠 있었다. 흔한 이름이었다. 자식을 잃은 상황에서 닮은 연예인이나 찾고 있다니 속이 있는 건가 싶었다. 남자의 얼굴을 보다 피식 웃어 버렸다. 의뢰인의 감정을 짐작할 필요는 없었다. 잘 울기만 하면 되었다. 대신 울어 주는 사람, 옛날에는 곡비라고 불리기도 했던 것 같았다. 지금은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일 뿐이었다.
더위 때문에 망가진 화장을 고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은 지하 원룸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였지만 폭염 경보까지 긴급 문자로 받은 날씨답게 걸어오는 동안 온몸이 땀에 젖었다.
긴급재난문자-〔국민안전처〕 안전 안내. 8월 3일 1시 폭염 경보, 노약자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수분 섭취, 물놀이 안전 등에 유의하세요.
노약자도 아니고 야외 활동도 안 하고 물놀이도 안 간 나는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이마를 가렸다. 작은 손은 이마 하나도 가려 주지 못했다. 사십 도를 웃도는 날씨 때문에 화장이 녹아 얼굴에 버짐 같은 자국을 남겼다. 거울을 보았다. 피부와 화장이 따로 놀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웠다.
하나로 묶은 머리에서 머리카락 몇 가닥을 빼 이마와 귀 옆에 늘어뜨렸다. 분을 덧칠해서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이게 했다. 땀 때문에 분이 얼굴에 스며들지 않고 하얗게 떴다. 세수한 다음에 화장을 덧발랐어야 했나. 입술에 난 각질을 뜯고 싶었지만 내버려 두었다. 립밤도 바르지 않았다. 온몸을 검은 원피스가 뒤덮고 있었다.
땀을 닦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남자가 다시 눈인사를 건넸다.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영정 사진을 정면에 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눈을 내리깐 채 눈물을 흘리자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울음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 울음을 막으려는 것처럼 입을 막은 손에 다른 손을 포갰다. 곧 홍수를 작은 댐으로 막을 수 없다는 듯 울음소리를 크게 냈다. 처음부터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덜 비극적이었다. 최대한 참고 있다고,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고 온몸으로 외치다가 못 참고 흘리는 울음이 가장 좋았다. 어렵지 않았다. 잠수해서 숨을 한껏 참았다가 내쉬는 것처럼 울음도 참다가 조금씩 내뱉으면 되었다.
마지막에는 온몸에서 힘을 빼고 대각선 방향으로 쓰러졌다. 그때도 사람들에게 절대로 얼굴을 보이지 않고 쓰러지자마자 엎드렸다. 아으으으, 로 시작했던 울음은 어그그그, 하는 외침으로 끝났다. 엎드린 뒤에도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맡에 휴지를 살짝 두고 가는 이도 있었다. 무대에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는 여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 같았다. 울음의 끝을 끌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바닥을 손바닥으로 한 번씩 세게 쳤다. 바닥과 손바닥이 만날 때마다 바닥이 아닌 심장을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어날 때는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어깨를 한 번 떨었다가 허리부터 일으켰다. 앞에 있던 휴지로 눈물을 찍어 냈다. 평소에 쓰던 것보다 얇은 휴지는 눈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손바닥에까지 눈물이 번졌다. 눈물 연기를 연습한 게 도움이 되었다. 연습과 실전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연습은 해도 돈이 안 나오지만 실전에서는 돈이 나왔다. 눈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이 눈물이 시간당 삼만 원짜리라고 생각했다. 잘 울기만 하면 돈을 준다는데 눈물이 안 나올 리 없었다.
유인형 씨를 닮았네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돈이라고 생각하며 우는 동안에도 유인형을 닮았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 들어 본 말은 아니었다. 유인형을 닮은 무명 배우 유인영. 작품에서가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대신 울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잇는 무명 배우. 나는 유인형의 낮은음자리표였다. 낮은음자리표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닮았다. 높은음자리표의 음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묵묵히 반주해 주는 모습이 유인형에게 온몸을 기울였던 나와 비슷했다.
돌돌돌,
돌연 유인형의 역사가 떠올랐다. 유인형은 스물세 살에 시트콤으로 데뷔했다가 신인상과 여우조연상을 이 년 사이에 연속으로 꿰찬 뒤 실종된 배우였다. 실종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시신도 찾지 못해 가족들도 포기했다. 닮았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게 들린 것은 유인형이 사라진 뒤에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십 분 넘게 실컷 뺀 눈물 대신 육개장 국물과 소주를 욱여넣고 있을 때였다. 남자가 맞은편에 앉았다. 남자의 눈에는 눈물 자국 하나 없었다.
남자는 비어 있던 잔에 소주를 채워 주며 물었다.
잘 우시던데요. 연습 많이 하셨나 봐요.
매일 연기를 연습하다 보니…… 배우 지망생이라서요.
아, 어쩐지 유명한 배우를 많이 닮았다 했어요. 제 친구가 기획사 사장인데 소개해 줄까요?
남자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잔을 단숨에 비웠다. 소주가 썼다. 내가 몇 편의 독립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유인영이라는 가명으로. 영화에서 나는 주인공의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고, 슈퍼 주인이기도 했고, 행인이기도 했고, 카페 손님이기도 했다. 진짜 유인형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을 역할이 나의 유일한 필모그래피였다.
남자가 빈 잔에 다시 소주를 채워 주면서 말했다.
뭐, 요새 닮은꼴로도 성공한 사람들 있잖아요. 예능에도 많이 나오고. 아예 평범한 얼굴보다야 주목받기 쉽겠죠. 연예인의 얼굴을 따라 성형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저는 성형한 게 아니에요. 예능인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 사실, 저는 이미 배우예요. 영화에도 출연한 적 있어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래요? 몰랐네요. 데뷔작 제목이 뭡니까?
가면, 가면이에요.
갑자기 가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엉뚱한 말이었다. 소주 몇 잔에 취할 리도 없는데 이상했다. 데뷔작 제목은 ‘가면’이 아니라 ‘가위’였는데 왜 그런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앞에 놓인 소주를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작품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는 것이 들통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었다. 남자는 자리에 앉은 채 기획사 사장의 명함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금박으로 된 명함이 눈을 찔렀다.
명함을 쥔 채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가면을 주웠다. 가면이 마침내 얼굴에 스며든 뒤에 옷 가게 창으로 얼굴을 보았다. 가면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유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