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뜻밖의 조기교육

둘째로 태어난 덕분에 조기교육을 받았네!

by 링고빙고 LingoBingo

90년대 초반, 영어는 '중학교에 가면 배우기 시작하는 제2외국어'였기에 당시 국민학생들은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4살 위 사촌오빠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영어를 접하게 됐고, 그걸 본 큰 이모가 우리 엄마에게 슬쩍 추천을 하셨다.


“얘네도 미리 좀 해두는 게 어때?”


그 한마디 덕분에, 선행학습과는 거리가 멀던 우리 남매는 얼떨결에 영어 조기교육 1세대가 되었다.


큰 이모의 추천 교재는 그 당시 아주 핫한 윤선생 영어교실.

국민학교 고학년이던 오빠에게는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카세트테이프와 교재 세트가 도착했다.

중학교 영어시간에 처음 배우는 회화,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전설의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반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게는 조금 다른 세트가 왔다.

미취학 아동이 읽을 법한 얇은 그림책과 내용이 녹음되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받았다.

이솝 우화, 안데르센 동화, 미국식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들이었는데 종이 질도 고급지고, 그림도 쨍하게 예뻤다.

윤성생 영어교실 테이프

방과 후 집에 오면 시간이 아주 많았는데, 영어를 읽을 줄 모르니 그냥 카세트테이프를 라디오처럼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거의 파닉스를 몸으로 익힌 첫 경험이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소리를 들리는 데로 따라 하며 듣고 또 듣고.


그렇게 놀면서 귀로만 들었던 그 진한 미국식 영어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디엔가 차곡차곡 쌓였던 모양이다.

몇 년 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의 영어 실력, 특히 발음이 슬슬 눈에 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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