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뜻밖의 조기교육 2

아빠의 해외 출장

by 링고빙고 LingoBingo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쓰던 시골 출신의 아빠는 80년대 초반, 이른바 사우디 오일머니를 벌어오던 산업 역군 1세대였고 그때 현지에서 필요해서 배운 영어를 바탕으로 귀국 후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 줄곧 그런 회사들만 다니셨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계" 회사들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 들어도 꽤 간지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 본사”에 출장을 다녀오시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 아빠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Wee Sing Silly Songs라는 카세트 테이프와 책 세트를 선물로 사 오셨다.

그 세트에 들어 있던 노래들이 어찌나 발랄하고 재밌던지.

인터넷도, 핸드폰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나는 그 카세트 테이프를 거의 매일매일 질릴 때까지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노래들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사실 그때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몰랐다.

그냥 멜로디가 좋았고, 버터향 가득한 그 미국식 발음이 좋아서 계속 들었을 뿐이다.

고작 열두 살, 미국이 어디있는지도 잘 몰랐던 내가 가사에 나오는 Delaware가 뭔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혀를 굴릴 때 나는 그 r 소리가 좋았고, 따라해보니 왠지 미국인 같기도 해서 혼자 꽤 뿌듯해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발음을 엄청 굴렸었고 어린 마음에 "나는 미국인 발음 할수 있다"고 오빠한테 엄청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도 같이 들어서 지금도 가끔 얘기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언어 발달 면에서 스펀지같던 시기라 편견없이 들리는 대로 듣고, 들리는 대로 따라 말했었다.

요즘과는 다르게 주변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내가 영어를 어떻게 발음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환경이 오히려 눈치보지 않고 자신감있게 말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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