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출산기 12

갈고리로 양막을 터뜨리다

by 링고빙고 LingoBingo

유도 분만 예약이 잡힌 날, 아침 8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첫째 출산 당시의 배고픔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터라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고, 마시면 배가 부른 "미숫가루 계열"의 음료수들을 챙겨 갔다.


미드와이프가 내진을 하더니 양막이 충분히 부드럽고 오늘 출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유도 분만의 세 가지 옵션을 설명했다.


프로스타글란딘 알약(Pessary) 을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진통이 오면 다시 병원으로 오는 방식
→ 번거로워 보여 바로 제외했다.

화학 성분 스트립(Propess) 을 양막 근처에 부착해 진통을 유도하는 방식
→ 몸에 부담이 될까 망설여졌다.

양막 파열(ARM, Artificial Rupture of Membranes) — 갈고리 같은 기구로 양막을 직접 터뜨리는 방식
→ 진행이 가장 빠르다는 말에 세 번째를 선택했다.

tempImagej2wvfu.heic 대략 이런 느낌?

잠시 뒤, 실습 중인 학생 미드와이프가 갈고리를 들고 나타났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시술이라 학생을 시킨 것 같다.

갈고리로 양막을 터트리자 따뜻한 양수가 흘러나오는 느낌이 전해졌다.
시간이 좀 지나고 양수가 다 빠지자 진통이 올 때까지 병원 복도를 걸으라고 했다.


병원 복도를 약 20분쯤 걸었는데 바로 강한 진통이 밀려왔다.
첫째 때는 파도처럼 천천히 오랫동안 밀려왔다면, 둘째는 쓰나미처럼 바로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진통제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진통을 겪으니 걷다가 한 자리에서 멈춰 끙끙대다가 겨우겨우 침대로 돌아왔다.
통증이 너무 강해서 내가 낸 적도 없는, 아주 낯선 짐승 같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 순간 출산 대기실 전체가 잠시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정말 쏘리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진통이 너무 심해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조금 더 버티고 나니 분만실이 준비가 끝났다고 이동하라고 했다.

분만실로 들어가니 한가운데 큰 욕조가 있었고 미드와이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따뜻한 물을 채우고 있었다.

NHS 병동은 수중 분만(water birth) 시설을 갖춘 방들이 있고 통증 완화 효과 때문에 인기가 많다.

따로 수중 분만을 요청한 적은 없었지만 순간 질문을 던질 여유도 없을 만큼 진통이 몰려와 그냥 물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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