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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l 08. 2022

초보 대학원생의 연구주제 찾기

지도교수의 영향력, 그리고 다시 느끼는 막막함

최대한 빨리 한 편의 논문을 쓰라. IF나 분량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논문 하나가 작성되는 과정을 우선 체험해보아야 한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였다. 김박사넷에서 봤던 문장 하나였는데 이것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연구의 시작과 끝은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어쩌면 대학원은 글쓰기를 배우러 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대학원 진학을 염두하고 있다고 모교 교수님들께 의견을 비칠 때마다 먼저 돌아오는 질문이 있었다.


박 선생님은 그럼 뭘 연구하실 건가요?


대학원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연구 주제라니요. 나는 마땅한 주제가 떠오르지도 않았고, 연구주제쯤이야 그저 진학만 하면 자연스레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주제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고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품은 큰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시적인 석사와 박사 논문이 나오고, 해당 분야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되며 자립적인 연구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관심분야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로 자신의 분야 안에서 추세를 따라 여러 주제를 건드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연구자로서 시작점이 될 수 있는 확고한 중심을 먼저 세우는 일은 중요했다.


건너서 들은 이공계열의 몇 연구실에서는 교수가 연구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 출연의 과제를 끼고 있는 계약형 대학원이 그랬다. 우리 대학에서도 지역 공유 대학 사업이나 국가산단과 연계하여 여러 가지 과제를 수행하는 학과들은 논문과 성과가 비교적 활발하게 나오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의 여러 연구실에서 들리는 후기들을 살펴보면 지도교수를 잘 만나서 그의 리더십에 기대어 몇 편의 소논문 정도는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학교 바이 학교고 랩 바이 랩이라지만 확실히 성과가 활발하게 나오는 쪽은 이공계열이다. 그리고 그 실적은 스타 교수 몇 명의 연구실에서 대부분 쏟아져 나왔다. 평균적인 연구역량이 아쉬운 지방대학에서는 더욱 그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보통 대학원을 처음 진학하면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전일제 대학원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도교수가 적게는 자신의 등록금과 생활비에서 많게는 졸업 후 취업까지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미 취업문제가 해결된 상태였고, 졸업을 한다고 한들, 교수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지도교수의 힘을 받아 무언가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덕에 오히려 교수와의 관계는 상당히 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연구에 오롯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점에서 전일제 대학원생에 비해 연구역량이 떨어질 수는 있겠으나 마음은 편하다. 파트타임 대학원생이 가진 양날의 칼이었다.


물론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꼭 이런 '사활'과 관련된 무거운 주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교수의 연구주제나 방법은 제자들에게 깊숙이 스며든다. 이는 학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수와 학부생의 관계가 가깝고, 학부 정원이 적은 몇 학과에서는 이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교대나 사범대의 경우, 싫어하는 교수가 있어서 늘 술자리에서 욕을 하다가도 졸업반이 되면 해당 분야에서 그 교수의 모습을 꼭 닮은 말을 하곤 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그런 걸까.




나의 지도교수는 연결주의와 제2언어 습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연결주의는 '배움'이 교점(node)의 연결로 이루어진다는 학습관을 가진 인지주의 패러다임이다. 이 교점은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제2언어 습득이라고 하면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고, 그 언어로 생각을 하며, 이런 종합적인 뇌의 움직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알고 싶어 하는 쪽이 인지언어학의 영역에 들어간다.


나는 연결주의에는 관심이 많으나 제2언어 습득에는 아직 시큰둥하다. 국어 교사는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L1 교육을 주된 일로 하기에, 외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L2 교육은 내가 마주치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몇 번 외국인을 상대로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보다는 도대체 왜 다들 문법을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문법의 교육내용을 어떻게 바꾸어야 재미있게 배울지에 관심이 있다. 접미사 '-이'를 전성 어미로 보면 틀리고 접사로 봐야 맞는 학교 문법의 내용이 과연 중요할까, '큰아버지'의 '큰-'이 어근이냐 접사냐를 두고 설명할 때, '형식 형태소인 접사에도 의미가 있는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명쾌하게 풀어낼 수는 없을까 하는 부분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나는 지도교수의 영향력 반, 나의 선택 반으로 연결주의와 문법교육 쪽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사실 연결주의에 대한 내용도 아직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책을 찾아볼수록 갸우뚱해진다. 학부 2학년 때, 처음 임용을 준비하며 여러 전공서를 보고 느끼던 그 막막함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 과연 이 어려운 내용들을 내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임용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교육학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교육심리에서 다루던 여러 용어들이 관련 도서를 읽을 때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업기억이나 일화기억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얇은 책 하나를 읽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어렵사리, 아주 어렵사리 조금씩 뭔가를 찾아서 배우고 있다. 9월 개강 전까지 최소한 기본 지식이라도 쌓아서 가야 할 텐데... 쉽지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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