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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Aug 17. 2022

척척석사, 걸음마부터 쉽지 않다.

글쓰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며칠 전 교보문고를 들렀다. 논문 작성과 관련된 작문서 몇 권을 골라왔다. 주말 오후, 의자에 눕듯이 기대어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얼마나 읽었을까, 문득 막연함과 부끄러움이 한없이 밀려온다. '논문'이라는 장르의 글을 쓴다는 것은 역시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저 두껍고 검은 학위 논문을 나같은 사람도 써낼 수가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흔한 우스갯소리로 학부를 졸업하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다가도, 석사를 진학하며 자신이 모르던 것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고들 한다. 지난달, 교수님들을 뵈며 은연중에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논문의 'ㄴ'자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서 어쭙잖게 주워들은 것은 많아서였을까, 막연하게 '나는 논문을 잘 쓰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당당함은 1차수 시작도 전에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나는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보통 논문의 구조는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선행연구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생각한 문제 상황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보다 앞선 선배 연구자들은 어떤 연구를 시도하였는가를 정리하고 각각의 의의에 대한 생각을 밝혀야 한다. 문제가 문제로서 가치가 없다면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들, 그 글은 처음부터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선행연구를 검토하는 일에서 연구는 시작된다. 탑 저널에 최근 게재된 논문들부터 시간 역순으로 n년치를 읽으며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여러 연구자의 글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칫 서두르면 표절이 발생한다. 그래서 해당 분야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초보자일수록 천천히 곱씹으며 조금씩 써 내려가야 한다. 분야에 대한 통찰이 부족할 경우에는 자신의 논문 주제 설정에서부터 오류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지도교수가 섬세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경우라면 좀 덜하겠으나, 방목형 교수를 만났다면 방심할 수 없다. 결국 주제를 잡았다가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라 '논문이 빨리 쓰일 수 있는 주제'를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제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것은 연구역량이 아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런 고상한 부분에서 문제를 겪는다면 그나마 좀 낫다. 현실은 워드프로세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대부분의 문서 처리는 한글을 사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단축키의 활용도 거의 한글을 기준으로 한다. 그나마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엑셀과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이 녀석들도  조금씩 활용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도 프로그램의 단축키 간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 헷갈린다. 대표적인 것이 저장과 셀 병합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습관적으로 다른 단축키를 누르고 있다. 그 덕에 몇 번 문서를 날려먹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 논문 작성은 MS 워드로 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한글로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던 터라 MS 워드가 단순히 선호도의 차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지 정리와 같은 논문 작성에 특화된 MS 워드의 기능들을 보며 미래의 나는 결국 워드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을 것이란 강한 직감을 받았다. 마음은 달리고 싶은데 현실은 걸음마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9월 개강을 앞두고 저널이라도 몇 편 읽고, 연구 동향이라도 정리해가려고 하던 나의 욕심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달아가고 있다.




책의 한 구절에서 명언을 하나 발견했다.


시작하는 방법은 말을 멈추고 즉시 행동하는 것이다.
- 월트 디즈니(Walt Disney) -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말'만을 하며 나의 앞길을 얕잡아 봤을까. 이제 다시, 큰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묵묵히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해 나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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