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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Mar 15. 2022

저, 사표 쓰겠습니다

인생 첫 퇴직, 그리고 이직

전체 교사 출근일 다음 날이었다.


"교무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내가 우리 OO샘이면 돈 달라는 거 말고는 다 해드리지"


"저, 사표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교원의 눈길이 나에게 쏠린 건 순식간이었다. 영원에 가까운 적막이 흐르고 교무부장은 되물었다.


"뭐라하노?!!"



한동안 브런치에 글이 없었다. 3학년 담임이 벅차기도 했고, 홀로도 여러 고민할 일들이 많아서 도저히 글이 잡히지 않았다. 서른의 문턱에 서서 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다. 임용이 된 후로 단 하루도 빠뜨린 적 없었던 고민이었다.


고민의 끝에서, 나는 다시 임용을 봤다. 그리고 공립에 합격하였다.


일의 발단은 9월 중순이었다. 공람에 교원대 파견 공문이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날씨가 포근하던 어느 날, 교육과정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교원대 파견에 관심이 있습니다."


흠칫 놀란 부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사립에서는 파견 활동이 힘들어요. 우리 재단에서 여태 파견을 갔던 선생님은 한 분도 안 계셔요."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대학 시절 때부터 현장에 나가게 되면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지원해보고 전국을 상대로 활동해보겠다는 나름의 개똥(?)포부가 있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얼마 후, 동교과인 국어과 최고 선배 선생님께 조심스레 이 고민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선배가 내놓은 답변은 내 남은 모든 희망이 꺾이는 대답이었다.


"선생님, 8학군 사립에서도 EBS나 파견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은 학교 생활이 쉽지 않아요. 그분들이 사내정치에서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 아세요? 왜 굳이 그 어려운 길을 가시려고 하시나요. 그런 활동은 하시려면 공립이 어울립니다."


나는 그 길로 한국사 시험부터 찾아봤다. 다행히 그날은 한국사 접수 마지막 날이었고, 거주지에서 먼 곳의 마지막 남은 자리에 어렵사리 시험 접수를 했다. 2주 뒤 한국사 시험에서 근근이 3급을 넘겼고, 10월 초순부터 모든 시간을 짜내서 재임용 준비를 시작했다.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사립에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끝없이 찾아봤었다. 그러나 번번이, 소속기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 아래, 많은 것들을 할 수 없었고, 아주 사소한 대외활동에도 관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공립도 관리자 눈치 보는 곳은 봐요."


내가 나의 답답함을 토로하다 보면 결국 듣게 되는 답변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실 듣는 저로서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장 친했던 선생님께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나는 이런 답변을 들었다.


아뿔싸, 우리 학교의 실태를 잊고 있었다. 전체 교직원의 절반 이상이 기간제 선생님들이시다. 내가 들어올 때만 해도 정교사 채용이 거의 이십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었다. 11월부터 슬슬 교무실의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도 재계약을 둘러싼 여러 선생님들의 불안 때문이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또래 선생님들 중, 내 동기를 제외하면 모든 선생님이 기간제 선생님이셨다. 내년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분들 앞에서 진로나 자유를 이야기하는 나의 고민은 한없이 어설프고 무례해 보였으리라.


나는 그렇게 어느 누구에게도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또 인정받거나 위로받지도 못할 고민을 가지고 일 년 반을 끙끙대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재임용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은 한없이 마음이 가벼웠고, 공부 역시 어려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년 전 공부했던 개론서를 다시 펴 들었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핵심 내용을 위주로 답안을 구성할 수 있는 지식만 추려냈고, 필요 부분이 적다 싶으면 과감하게 발췌독만 했다. 모든 내용을 가져간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철저하게 우선순위에 따라 전 영역을 단권화했다. 내용은 적게 추리되, 회독을 늘려 각 영역당 10 회독을 하자는 목표로 모든 공강 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투자했다.


떨어져도 계속 이 학교에 있으면 그만이라는 배짱으로 1차를 쳤고, 꽤 높은 점수로 1차 합격을 했다. 2차는 오히려 더 자신이 있었다. 사립 2차도 뚫어냈으니 공립을 못하랴 하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시험에 임했다. 다행히 2차도 1차 점수에 상관없이 붙을 만큼 높은 점수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재단에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사립에서 재임용은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일이었고,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최종 발표가 나는 그날까지 나의 재임용 준비는 하나의 007 작전마냥 비밀스레 진행됐다.


대망의 합격 발표날, 10시에 합격 창을 확인하고서 나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오히려, 그동안 가장 목말랐고 답답했던 기회의 자유를 이제는 나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뜨거운 물에 재빨리 워를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마지막 출근을 했다.


약 두 달 간의 짧은 재임용 준비였고,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간 세 번을 두들겨도 열리지 않던 공립 임용의 문이 3학년 담임 병행에 두 달 공부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열려버렸다. 과연 이 시험은 실력으로 붙는 시험일까, 운으로 붙는 시험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전임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곳에서 경력직 신입(?)의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같은 시도교육청임에도 나이스 코드가 새로 발급되어 사립의 경력은 '임용 전 경력'란에 따로 표기되어 있다. 아직까지도 모든 학교 일처리에서 전임지의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구슬피 새 학교에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꿈만 같았던 2년 간의 사립 생활, 앞으로 그곳에서 쌓았던 많은 경험과 배움들도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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