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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Mar 14. 2022

수돗물을 마시며 산다

그냥 했는데 어쩌다 보니 친환경

환경부에서 실시한 '2021년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 36%가 물을 먹을 때 수돗물을 그대로 먹거나 끓여먹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한국 수돗물은 유엔 수질평가에서 122개국 중 8위에 오를 만큼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오염 사고가 반복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그 결과 많은 국민들이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기사탄소 배출 적은 수돗물에 관한 글을 보고 나는 왜 수돗물을 먹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나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수돗물을 주로 마신다


어렸을 때야 부모의 선택에 따라 식수를 정하게 되니 그 시절은 제외하고 자립한 이후의 식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남편은 생수를 좋아했다. 늘 2리터짜리 생수병을 쌓아두고 마셨으며 일회용품 사용에서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더블 샷을 더블로 추가해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몇 잔을 일회용 컵에 받아 마시며 사는 사람이었다. 컵 하나를 씻어가며 하루를 쓰는 나와는 살아온 방식부터 많은 것이 다른 사람이었다. 결혼 후 남편은 딱 한 번 식기류를 잔뜩 싸들고 온 적이 있는데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컵을 다섯 개나 들고 와서 찬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런 사람과 생수배달 없이 수돗물을 마셔야 하기 위해서는 당위성이 필요했다. 우리는 새 아파트에 거주했었기 때문에 배관에 관한 두려움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들은 남편에게 나와 싸워야 할 만큼 대단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같이 내려놓고 별다른 투쟁 없이 수돗물을 마시기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수돗물을 마시는 나는 어떻게 차별의 대상이 되었나


이유는 간단하다. 미개하고 청결하지 못해서.

예전 글에서 나는 중산층임을 밝힌 바 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동네에 거주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많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줄어들고 있다는 중산층이다. 상황이 힘들어진 동네 주민에 대한 우려를 보내면서도 아이들에게 최신형 노트북과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를 사주는데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동네엔 제일 많다. 전기차로 전환하는 속도는 언론에서 나오는 것보다 빠르고 집에는 당연한 듯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냉장고는 김치냉장고 포함 2,000리터에 육박하고 정수기와는 별도로 냉장고 정수기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미개의 표본이자 경악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도 친구가 있단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식으로 바라봤던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수돗물을 먹는 것이 죄는 아닌데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필터도 없이 수돗물을 받아 음용하는 불결한 사람이 되었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면역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경박한 사람이 되었다. 이 시기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 덕분에 인생에서 불필요한 관계를 끊어내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안 맞는 사람이 알아서 멀어지는 것만큼 운이 좋은 일도 잘 없다.

나름 먹고살만한 사람들의 표준이 아파트, 차에서 아파트와 차를 포함한 스마트기기, 프리미엄 냉장고, 명품 음향장치, 고급스럽고 성능 좋은 정수기를 포함하던 시대에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당시에는 무엇이 시발점인지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중 하나가 수돗물이었던 것 같다. 수돗물이란 내게 그런 의미인 것이다.


수돗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순


지금은 세월이 흘러 수도꼭지에 간이 필터를 달아 식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브리타라는 여과물병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라떼'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다. 정수기가 설치된 집에 가면 꼭 정수기로 물을 받아 차를 끓여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수돗물은 어디에 사용하지?


세탁기 물, 양치질에 사용하는 물, 목욕에 사용하는 물, 설거지에 사용하는 물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수돗물을 사용하는데 오로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식수에만 정수기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의아해서 왜 모든 부분에 정수기 물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의 면역체계는 식수를 통해서만 반응하지 않는다. 입는 옷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설거지 후 그릇에 잔존하는 수돗물의 성분은 음식과 합쳐져 위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목욕을 하고 양치를 하며 입을 헹굴 때 사용하는 수돗물을 우리는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까. 

정수기를 사용한다면 정수기 내부의 위생상태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수돗물에서 정수기로 흘러들어 가는 관은 괜찮은 것일까? 정수기 내부의 필터는 주기적으로 교환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사용한 필터의 삶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우리 집 현관문을 나선 필터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재활용이 되고 있을까. 그냥 버려지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오염원이 되어 물이나 흙, 공기 같은 자원을 오염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일까.


왜 수돗물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은 이토록 상대적이며 차별적으로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수돗물에는 경악을 금치 못함과 동시에 친환경이나 유기농 농작물의 생산 또는 관리 역시 믿지 못해서 저렴한 일반 과채류를 산 다음 농약 때문에 걱정이라며 과채류 세정제를 구입해서 믿을 수 없다는 수돗물로 씻어서 먹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행동을 지적하며 화학비료 방사선 동위원소까지 측정해가며 유기농 인증을 받는 농부들의 마음과 정부 인증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엔 나는 너무 작고 게으른 사람이다. 그저 '그러게요'라는 말로 상황을 넘겨버린다.


그래서 계속 마시기로 했다


때로 심리적 저항선은 수치로 증명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로 시작하는 단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수많은 '카더라'를 통해 알 수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카더라와 진실의 경계에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행동을 무수히 반복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할만한 납득 가능한 수준의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늘 하던 대로 그냥 수돗물을 계속 마시기로 했다.


수돗물은 저급하고 정수기 물은 꽤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계속 수돗물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목욕도 하고 요리도 한다. 하루의 마무리는 다음날 마실 물을 끓이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삶을 지속한다. 다행스럽게도 죽지 않고 여전히 잘 살아 있다. 


수돗물을 먹고도 아직 살아있다


수돗물을 먹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낡은 배관 문제는 수도꼭지에 설치하는 필터나 아예 싱크대 아래쪽에 설치할 수 있는 대용량 필터로도 해결 가능하다. 가까운 마트에 가면 관련 제품들을 잔뜩 판매하고 있다. 상권에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지역에 살아서 마트 가는 게 놀이동산 가는 일처럼 온 가족 행사가 되어버린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된다. 브리타도 그렇지만 국내 중소기업에서 제작하는 필터도 수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아마 필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필터 수거 및 재활용 시장은 점점 커져갈 것이다. 오늘의 투자 포인트 배달 유통, ESG, 그린마켓, 리사이클 마켓, 리유저블 마켓


그렇다면 수돗물을 먹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각자의 생활을 바탕으로 왜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진짜 수돗물을 마시지 못하는 이유를 찾았다면 이제 그 이유가 합당했는지 아니면 토대가 불분명한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불안의 원인이 허상이었다면 한 번 용기 내서 컵에 수돗물을 담아 각자의 방식에 맞춰서 마셔보자. 


우리 집은 보리차나 결명자차를 주로 마시고 홍차를 우려 아이스티를 즐겨먹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차는 독일의 다만 프레르를 제일 좋아하고 그 외 다른 브랜드의 차들을 기분과 상황에 따라 골라 마신다. 요즘 아이들과 즐겨 마시는 차는 영국의 신생 브랜드인 브루 티의 디카페인 라인인데 냉침으로도 참 맛있다. 개성 있게 즐겨 마시는 음료에 수돗물이 더해진다고 엄청나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도 느낌으로도 말이다.


마지막 주방일은 물끓이기


어쩌다 보니 고작 수돗물 한 잔이 여기까지 왔다.


이상으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 사회를 바꾼다고 믿고 있는 14년 차 프로 주부의 수돗물 마시는 이야기를 마친다.


당신은 어떤 물을 마시고 살고 있나요.


수돗물 마시기로 쉽고 빠른 환경보호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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