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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Mar 11. 2022

저는 중산층입니다

부끄러운 정치적 신념에 관하여


저는 중산층입니다.


한때는 많았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바로 그 중산층입니다. 소득은 잘 알려진 지표를 따르자면 상위층에 속하지만 같은 그룹일지라도 하늘과 땅 차이의 재산 격차가 있으니 최상위층이 포함된 상위층에서 가장 가난한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통계는 눈가림용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종종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는데 근로소득세는 소득격차의 비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니 최상층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 가족보다 낮은 생활 수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올라가는 속도에 맞춰 현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를 상상하면 불안해집니다.


두려움이 큽니다.


서울 시내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의 유료 회원이고 어느 공연사의 평생회원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좌석의 공연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회원가에 볼 수 있고, 수도권의 인프라란 인프라는 다 누리며 삽니다. 그럼에도 먹고살기 팍팍한 세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넋두리를 많이 합니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얼어붙은 강물 같은 존재가 바로 중산층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출생하는 순간부터 각종 통장을 만들어주고 투자를 시작한 후 만 3세부터 경제교육을 시작하지만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닙니다. 왜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면 결국은 두려운 마음으로 귀결됩니다. 재산 학벌 직장 심지어 누리고 사는 문화생활과 기부활동까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쪼그라들기 시작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까 두려워서 그렇지 않은 척 쉴 새 없이 단단한 바닥을 만드는데 열중합니다.


투표를 합니다.


여성의 날에는 어디에 가더라도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64일 동안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이어지겠죠. 그래서 364일 동안 수시로 여성의 날을 생각해 줄 것 같은 사람을 고릅니다.


갑자기 몸이 아플 때마다 두렵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떡하지?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완벽한 형태의 가족이 무너져도 내 아이들은 괜찮을까? 그래서 다양한 가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합니다.


근로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등 다양한 형태의 세금을 낼 때마다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내는 이 아까운 돈으로 사회는 무엇을 바꾸는 데 사용할까. 누가 어디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예산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성의를 보인 후보에게 투표합니다.


재산의 유무나 양에 관계없이 편을 갈라 비난을 부추기는 사람보다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 같은 사람을 고르려고 노력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언론사의 성향에 관계없이 포용적인 자세로 인터뷰에 응한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사회의 어두운 곳에 시선을 주는 사람을 선택하려고 애씁니다. 주류의 인생을 보장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누구라도 음지로 가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제각각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국민 모두를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투표합니다.


사회는 한 번에 변화하지 않습니다. 20대 정부가 들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대 대통령이 진행한 과제들 중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을 선별해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다음 21대 대통령을 위해 좋은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각각의 정부도 연대가 필요하니까요.,


세심한 기준은 탐욕의 방증


우리 가족을 위해 바닥을 다지는 일은 예상외로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자주 생각합니다. 바닥에 푹신한 매트를 깔아 두면 어떨까. 하다못해 누비솜 이불이라도 깔아 두면 덜 두렵지 않을까. 금융위기를 겪으며 몸집을 키운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복지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남편 월급이 기백만 원 줄어도 괜찮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따위의 구질구질한 생각이 종국에 가서는 결정적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으로 뻗어나갑니다. 지지정당이나 지지후보가 없는 사람의 정치적 관심이란 가장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안락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투표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나'입니다. 나와 가족을 위해 바닥에 가장 두터운 요를 깔아줄 것 같은 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중산층은 말 그대로 중산층이라서 선별복지에서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음과 동시에 기득권의 혜택과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강제로 섬세할 수밖에요. 결국 꼼꼼한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탐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가족의 윤택한 삶이 지속되려면 정부가 바뀌어도 기조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쓸데없는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아야 하는 거고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알맹이의 실체가 고작 이따위라서 투표를 하고 나면 자조가 뒤따릅니다. 하지만 다음 투표에서도 또 그렇게 나를 위한 이기적인 표를 던지겠죠.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을 테지만 저처럼 이기주의로 꾸역꾸역 밀어 올린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숨기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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