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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Sep 28. 2017

퇴근하고 책 쓰기

언제나 시작은 창대하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거진 20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2015년 직장인이라는게 되었다. 직장인이 된 내가 맞닥뜨린 수많은 어려운 것들 중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것이 있다. 퇴근하고 도대체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본가에서 살때고, 일이 많은 때도 아니었다. 그래서 일곱시가 되면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분당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분당에서 종로까지’라고 하면 시계를 넘고 강을 건너 남산터널을 지나가는 험난하고 지난한 길이 예상되지만, 사실 막히지 않을때는 놀랍게도 2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였다. (진짜 20분 걸릴때도 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도 평일 퇴근길의 교통난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시간이 꽤 걸리곤 했다. 넷플릭스도 없던 때라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자거나 했다. 그렇게 거의 한시간을 걸려 종로에 도착하면 참으로 허망했다.

 어떤 날은 바로 집으로 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친구라고 해봐야 죄다 학회 같이 하던 아이들이라 안암이나 종로 어디쯤에서 맥주잔이나 휘적거리며 학교다닐때 재미있었지, 회사도 재미는 있다.. 뭐하고 살까 그런 돌고도는 이야기만 해댔다. 그때는 미래를 위한 뼈대를 쌓는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미래라는 것은 내가 쌓는다고 쌓아지지 않는다는걸 이제 깨달았지. 그래도 종로에서 먹은 제주돼지고기는 맛있었다.

 진짜 걱정은 집에 가게 되면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이라는게 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도 못하고 온갖 신경질은 부리는 아이가 티비에 나온다면 나였을것이다. 집에 책상은 있었지만, 옷걸이와 다름 없었기에 당연히 집에 와서 영어공부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 편히 티비나 보고 쉬었다면 좋았을텐데, 성질머리도 곱게 먹지 못해서 ‘뭔가 생산적이지 않으면 안돼’라는 강박으로 스트레스나 받아 댔다.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레고도 해봤고, 보드도 타봤고, 당연히 운동이나 영어공부도 했다. 집을 구해서 나와 산 다음에는 요리를 해보기도 했고, 집안을 채우기 위해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모바일로. 그러다 점점 일이 많아졌고,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하지만 퇴근이 늦는다고 노는 시간이 줄지는 않았던것 같다. 오히려 보상심리로 더 늦도록 술을 마시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했다.

 그렇다. 퇴근하고 책 쓰기라는 제목은 사실, 퇴근하고 놀았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동안 놀면서 끄적거렸던 것들을 찾아서  방향을 잡고 살을 입히기도 할거고, 술마시면서 떠들었던 이야기나 여행이나 평소에 했던 생각을 정리해서 쓰려고 한다. 사실 그냥 차르르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과연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지만, 일단 시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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