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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Feb 01. 2019

노트가 없으면 몰스킨을 쓰면 되지?

많은 사람이 믿으면 허구도 현실이 된다 #매거진B 몰스킨

Qu'ils mangent de la brioche!
(먹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복사붙여넣기한 흔적이 역력한 위의 문장은 (들리는 바에 따르면)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불후의 명대사다. 사치를 일삼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보다 못한 신하 한명이 "왕비님, 지금 국민들은 먹을 빵도 없어서 굶주리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더니,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건지 애당초 알아들을 생각도 없었던건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렇게 대답을 했고, 이를 전해들은 군중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눈앞에 굶어죽어가는 자식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으면서 바스티유 감옥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사실 마리앙투아네트는 딱히 사치스런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저런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마리앙투아네트가 인스타그램을 했던것도 아닌데 왕실에서 오고가는 대화가 일반 대중에게 공공연히 알려진다는 것도 좀 의아하긴 하다.


'한 사람의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이면 세계도 움직일 수 있다.' 왠지 누군가가 했던 명언같지만, 그냥 방금 생각해서 써본 말이다. 하고 싶은말을 정확히 표현할 명언이 생각나지 않아서 만들어 쓰긴 했지만, 살다보면 이렇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믿는 것, 그것이 마치 사실처럼 되고 실제 결과까지 만들어내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겪고는 한다. 실제로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도 모기지 시장이 붕괴될거라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도 하고,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도 심리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고는 한다. 또 굳이 금융시장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회사 내에 소문이 퍼지는 것만 봐도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그럴듯한 것이 더 중요한것 같기는 하다. 


역사와 금융 이야기로 시작해서인지 좀 어두운 느낌이 나는데, 사실 이런 '믿음'이 제일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브랜딩'이 아닐까 한다. '브랜드'라는 단어와 '스토리'라는 단어는 마치 스마트폰+충전 마냥 세트로 다닌지 너무 오래되서 이제는 PPT자료에 넣으면 식상해서 못 쓸 정도다. (매번 새로운 말을 창작하는게 너무 힘들다.) 단순히 기능 좋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는 무언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게 수 없이 많은 브랜드 스토리 가운데, 몰스킨의 브랜드 스토리를 매거진B Moleskine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스토리 자체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서 매우 흥미로웠고 기억에 남았다.


*출처 : Moleskine.com


몰스킨의 브랜드 스토리를 요약해보자면, 마티스와 피카소, 헤밍웨이가 쓰던 노트. 그래서 잘은 모르겠지만 100년 정도 된 노트 브랜드일거라는 이야기. 신입사원때 선배들에게 선물받은 이후로 뭔지 모를 편안한 필기감과 있어 보이는 디자인에 나도 모르게 오랜 시간 써왔는데, 이런 스토리를 알았더라면 뭔가 더 있어 보이는 나의 모습에 만족하고 내 몰스킨 노트를 들고 스타벅스에 더 자주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Magazine B에는 저 스토리와 함께 이게 사실은 허구라는 것도 함께 나와 있어서, 스토리에 취할 틈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Moleskine은 1997년에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에서 기획한 노트이고, 헤밍웨이가 썼을 거라는 것은 그저 '이런 형태의 노트를 그 당시 사람들이 많이 썼으니 그 양반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작가 브루스 채트윈의 여행기 송라인 <the Songlines> 에 과거 프랑스 사람들이 쓰던 노트 '카르네 몰스킨 Carnets Moleskines' 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밀라노의 디자이너 마리아 세브레곤디 Maria Sebregondi 가 복원해낸 형태라고.


그러고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브랜드들이 굉장히 그럴듯한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걸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생각을 하고 브랜드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는 했다. 그리고 한꺼풀 벗겨보면 생각보다 브랜드라는 것이, 처음부터 엄청난 사명을 띄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어쩌다보니 만들어졌는데, 어느정도 인지도가 쌓인 이후에 스토리를 재정비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걸 보면, 마냥 멀게만 느껴지던 명품들이나 유명 브랜드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미국인 창업자가 유럽 느낌의 스토리를 넣으려고 유럽브랜드처럼 이름지은 haagendazs.   *출처 : haagendazs.co.kr

헤밍웨이가 쓰던 노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몰스킨이 좋다. 사실 Magazine B 에서 다뤄졌던 여러 브랜드 중 몇 안되는, 나와 애착이 강한 브랜드다. 어딘지 모르게 '적당한'느낌이 좋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고 겉 커버의 무게도 적당한 느낌. 이미 여기저기서 받고 직접 산 다이어리로 책장이 빼곡하지만 그래도 서점에만 가면 눈길이 가고 한권 더 사고 싶은 노트다. 그렇게보면 결국 사랑받는 브랜드는 사실 스토리건 뭐건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들어서 '어차피' 살 것인데 이왕이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으면 더 좋은 그런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스토리건 일단 본질이 마음에 들어야 진짜로 믿고 싶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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