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고래 Jul 21. 2019

신입사원의 첫 프로젝트

모바일 교육 플랫폼 만들기 - 1편

 00 씨가 한번 맡아서 해봐. 잘할 것 같아서 믿고 맡기는 거야.

 영업지원팀 신입사원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현장사원 교육을 위한 모바일 교육 플랫폼을 만드는 일의 단독 PM을 맡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나를 믿고 맡겨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팀원들이 모두 못/안 하겠다고 해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듯, 우리 사업부의 영업지원팀도 예산/수익성 관리부터 전략 자료 만들기, 채권 및 재고 관리, 프로모션 기획, 간단한 인사관리, 본사/현장 임직원 교육, 사업부 복지 프로그램 운영, 임원 모시기, 그 외 상위부서에서 떨어지는 일 등등 온갖 일들을 모두 하고 있었고, 당연히 팀원수는 턱없이 적었기에 팀원들 모두 일인당 몇 개씩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팀장님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 것이었다. 

 현장사원이 많은 회사의 특성상 그들을 교육시키는 것에 많은 예산과 사람이 투입되고는 했는데, 당시 이런 교육을 모바일 교육 형태로 바꾸는 것이 트렌드였다. 당시 팀장님은 항상 성과에 목말라 있던 분이어서 이슈몰이할 만한 건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그분의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가 딱이라고 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다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과부하 상태였고, 결국 흘러 흘러 새파란 신입이었던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드라마 속 신입사원들은 시작부터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아서 완벽하게 해내고 회장 앞에서 PT를 하고 그 와중에 연애까지 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현실 회사원이었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앱을 만들어 본다는 경험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문제는 내가 앱을 써보기만 했지 만드는 것을 해봤을 리 없었고, 순수한 백지 같은 뇌를 가진 신입이었기 때문에 회사의 어떤 부서에 어떻게 연락해서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될지도 전혀 몰랐다. 

 더군다나 나 또한 다른 직원들처럼 이미 두세 개의 업무를 단독으로 맡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연히 그 일들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사업부 내에 해당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른 사업부에 물어가면서 개념부터 익혀야 했었다. 시간이 충분히 있어도 될까 말까 한 업무를 받았는데 그 날 그 날의 다른 업무들만 처리하는데 급급하다보니 프로젝트 진행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게 되었다.

 시간과 애꿎은 멘탈만 소진하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직속 선배가 일전에 브랜드 홈페이지 관련 자료를 참고하라고 넘겨줬었는데, 여기에는 대략적인 화면 구성부터 세부적인 기능 정의까지 모든 것들이 나와 있었다. 웹디자인부터 IT기술적인 부분까지 모두 분석해서 자료를 만들어야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니... 이런 모든 부분들을 챙겨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가뜩이나 정신 못 차리던 나는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팀장님은 틈틈이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나에게 추가로 말씀해주시고는 했는데 아직 시작도 못한 프로젝트에 범위만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점점 더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프로젝트 진행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어때요? 참 쉽죠? <출처 : The Joy of Painting>

 사실 선배가 자료를 넘겨준 것, 팀장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것들은 그들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헤매고 있는 신입을 도와준 행동들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걸 듣고 더 멘붕에 빠졌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기획자로서 내가 나의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미 프로젝트를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었다면, IT 개발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라도 있었다면 취할 조언은 취하고, 참고만 할 부분은 참고만 하면서 한 스텝 한 스텝 일을 진행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심각하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주변의 조언들을 모두 반영하려고 했고, 취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키려 하다가 점점 생각만 많아지고 행동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저자 중 한 사람이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내용이 있었다. 최근 스페인 하숙에 나왔던 바로 그 순례코스 이야기인데, 총연장 800km인 데다가 중간에 산맥도 넘어야 해서 쉽지 않은 그 길을 두 사람이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였다. 

차오르는 숨과 10kg에 달하는 배낭으로 짓눌린 몸은 사진을 찍거나 말을 하는 것이 사치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중략)....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 겪어 보지 못한 고통에 급기야 몸이 반항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자 원망의 말을 꺼낼 수 없었고 그녀를 부축해 다시 길을 걸었다....(중략)... 그녀의 표정을 보니 '포기'라는 단어가 나올 것 같았다. 내심 나도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상태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영성아, 우리 하루를 걷자. 800킬로미터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만 생각하고 걸어보자." <완벽한 공부법 中>

만약 그 시절 고민 많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위 내용과 비슷할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늘 할 일을 하자."라고. 실제로 답이 없었던 그 프로젝트도 작지만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Tips for Junior 

Q :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새로운 업무를 맡았을 때?

A :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하다 못해 구글링이라도 하면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문성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