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요?
대한민국에서 '꼰대'라는 단어만큼이나 생명력이 좋은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이 말은 미디어는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수 없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수직적인 자세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지쳐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멘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있는 것 같다. 한 치 앞도 알기 힘든 세상 속에서 우리는 부동산/주식/취업/커리어 멘토 같은 실질적인 부분뿐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멘토들을 찾아 헤맨다.
꼰대가 되었건 멘토가 되었건 '조언'이라는 행동을 하는 것은 똑같은데, 누군가는 꼰대가 되고 누군가는 멘토가 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만약 딱 하나의 차이점만을 말해야 한다면, 나는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정말로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요?" 상대방의 성장과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기에 조언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앞서는지에 따라 꼰대와 멘토가 결정된다고 본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꼰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도 실제로 자신이 타인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의 진짜 마음은 원래 자기도 잘 모르는 법이다. 꼰대들이 하는 조언을 가장한 훈계를 되짚어보면, 아니, 나조차 가끔 정신 못 차리고 행동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서 쏟아 내는 말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언을 하는데 나를 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유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가장 흔하게 나의 잘남을 보여주고 싶어서 조언하는 '잘남 표현형'이 있다. 자기 효능감 -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감정 - 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삶을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자기 자랑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자기 자랑이 잘못된 대상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되면 바로 꼰대질이 된다. 남에게 조언을 하는 나, 남이 놓친 문제점을 짚어내는 나,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이런 나의 멋짐에 취해서 조언을 하다 보면, 남이 청하지 않아도 찾아다니며 조언을 하는 부정적인 오지라퍼가 된다. 또 조언 사이에 자기 자랑 양념을 투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머치 토커가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대안이 없는 비판만을 일삼는 프로지적러가 될 수 있다. 원래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안을 생각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잘남 표현형' 꼰대들은 애당초 목적이 자기 자랑이었지 문제 해결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적이 곧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는 이런 부분을 볼 줄 모르지? 나니까 너의 잘못을 짚어줄 수 있는 거야. 내가 이렇게 예리한 사람이야.' 이런 자기감정에 도취된다.
두 번째는 타인을 통제하려는 마음으로 조언을 하는 '컨트롤러' 유형이다. 내가 무언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통제력'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한 감정이다. 만약 완벽한 통제를 통해 결과물까지 좋다는 그 감정은 더욱 극대화된다. (게임 캐릭터를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이겼을 때를 생각해 보면 쉽다.) 이 감정은 너무 강하기에, 통제를 통해 내가 실제로 얻는 이득이 없어도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다음 행동을 내 말대로 하고 싶게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특정 음식은 반드시 본인이 지정하는 방식대로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유형이 있겠다. (국밥에는 반드시 다진 양념을 넣어 먹어야 한다고 한다든가) 이런 유형이 되면 위의 국밥 사례처럼 타인의 취향이나 앞뒤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솔루션만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기 쉽다. 아무리 나에게 조언을 청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은 나보다 상대방이 훨씬 더 잘 알고, 그 사람만의 취향과 삶의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내 말만을 따르기 강요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폭력이다.
마지막 유형은 조언을 가장하여 내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이윤추구형'이다. 이런 분들은 정말 너무 속이 훤히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이런 기회 쉽게 안 온다며 열정 페이를 받고 일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든가, 조언을 가장하여 상대방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구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다.
좋은 마음으로 조언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유형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잘 돌아보지 못하고 마음 가는 대로 조언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을 컨트롤하려 하거나 내 자랑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지난 몇 년간 취업 컨설팅을 하면서, 회사에서 후배들을 대하면서 나 스스로 이런 경험들이 많아서 지금도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하고는 한다.
조언해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원할 때까지 기다리기, 함께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짧고 간결하게 요약하기, 상대방의 성향을 존중하고, 내 솔루션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인정하고 먼발치에서 응원해주기. 시간과 노력을 써서 조언하는 것도 힘든데 이 모든 것들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던 하나의 질문, "정말로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꼰대보다는 멘토에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멘토가 되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에 열거한 노력들은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