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의와 그렇지 못한 회의를 구분하는 Key Question
"00아, 오늘 회의할 거니까 회의실 좀 잡아둬."
"아 네 몇 시로 잡으면 될까요?"
"언제 할지 모르니까 일단 하루 전체 다 잡아두고, 팀원 전체 다 모이라고 해. 아 00팀에 00이랑, 00 이도 다 오라고 하고."
1~2년 차 시절, 막내였던 내게 주어진 몇 가지 역할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회의실 확보하기였다. 그 당시의 회의는 대부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언제 할 건지 일정도 정확하지 않았고 참여인원을 선정하는 기준도 딱히 없이 - 일단 최대한 많이 부르자 -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회의 어젠다를 미리 공유한다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물을 도출한다거나 하는 효율적인 회의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다.
아직 회사생활과 일에 대한 명확한 주관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이것이 맞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회사의 많은 팀들이 저런 식으로 하루 종일 회의실을 예약하다 보니, 실제로는 비어있더라도 시스템상에서는 회의실은 항상 만실이어서 정작 써야 할 사람들이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막내들은 여기저기 다른 팀에 연락해서 이 회의실을 실제로 쓰는지, 지금 당장 팀장님이 회의를 하자고 하셔서 급해서 그러는데 양보해줄 수 없는지를 사정하는 것이 또 하나의 업무였다. 또, 언제 회의를 할지 모르니 팀원들은 다른 업무나 미팅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워 일종의 5분 대기 상태로 자리에 붙어 있어야 했고, 미리 어젠다도 알 수 없으니 회의는 양질의 토의 없이 일방적인 훈계를 듣거나 결론 없이 시간만 한참 보내다가 끝나는 일도 많았다.
라떼 시절의 옛날이야기로만 전해지면 좋을 상황들이지만, 애석하게도 불과 작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일하는 분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AI와 자율주행을 논하는 2021년 현재에도, 아직도 80~90년대의 회의방식이 남아있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업무방식이 뒤바뀌어 회의를 안 해도 되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각기 다른 업무영역을 가진 여러 사람이 모여 일을 진행하는 만큼 일을 함에 있어 회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회의라면,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책에서 접하는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의 회의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이미 수많은 기업문화 전문가들이 다양한 답을 하고 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답을 내려보자면, 좋은 회의를 결정하는 기준은 딱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그 질문은 바로 회의가 업무의 수단으로 활용되는지, 궁극적인 목적으로 둔갑하는지? 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왜 회의를 할까? 현황을 공유하건, 아이디어를 모으건, 어떤 안건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건 원하는 형태의 결과가 있고, 이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렇게 업무 진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도구로서 회의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 그 자체를 업무의 목적-결과물로 인식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러 회의실 문을 열어놓고 큰 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티를 내는 식으로 회의를 하기도 하고, 업무 결과를 기록할 때, '00 협의체 개설, 주 0회 회의' 이런 식으로 회의를 개최했다는 것 그 자체를 업무 성과물로서 기재하기도 한다. 물론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 하는 업무는 주기적인 회의가 필요하지만, 회의를 열었다고 성과가 된다기보다, 회의를 통해 실제 어떤 협력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회의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성과물로서 포장되다 보면, 당연히 회의를 개최할 권한을 가진 사람은 회의를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더 길게 하게 된다. 그래야 내가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메일이나 메신저, 협업 툴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이슈도 일단 사람을 모아서 회의를 열게 되고, 필수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참석시키고, 꼼꼼히 어젠다를 설정과 퍼실리테이션 없이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결론 없이 끝나는 회의가 되고야 만다.
'그냥 회의해서 정해보자.'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회의라는 수단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에 생각하게 되면, 생각보다 해야 할 것이 많다. 내가 얻고 싶은 결과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하고, 참석자는 누가 몇 명이나 모일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원활한 논의를 위해 사전에 어젠다와 배경 내용도 정리해야 하고, 회의 당일에는 논의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적절히 퍼실리테이션도 해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꼭 필요한 순간에만 필요한 방식으로 회의를 하는 습관이 형성되게 된다.
사실 나 또한 내가 회의를 주최 할 때 위의 방식을 정확히 지켜서 하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해보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밖에 주지 못할 것 같다. 때로는 의미 없는 회의를 주최하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해 생산적인 논의 없이 끝나는 회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회의 참석자들의 시간을 귀중하게 쓰고 싶은 생각에 지금도 계속해서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며 몇 해전 읽어보았던 '회의 없는 조직'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좋은 회의는 기대하는 결과물이 명확해야 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되어야 하고, 필수 인원만 참석하여 편안한 분위기에는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등 많은 조언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지키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회의를 목적이 아닌 업무의 수단으로 보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회의문화가 조금씩이나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