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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Jan 11. 2021

8년차, 일을 어렵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회사일이 너무 편해진 직장인의 21년 새해 다짐

 21년 1월 1일, 나는 만 7년을 꽉꽉 채우고 8년차 직장인의 삶을 시작했다. 내가 8년차라니! 그것도 한 회사에서! 초등학교 6년보다도 길고, 휴학기간을 포함한 대학생 시절보다도 더 긴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낸 것이다. 10이라는 숫자에 더욱 가까워져서 그런 것일까, 어째서인지 7이라는 숫자보다 8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훨씬 큰 것 같다.

 3년차까지의 주니어 시절에는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매번 떨어지는 업무마다 어떻게든 해결은 했고, 때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박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매일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임했고,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일이 쉬워졌다. 아마 4년차부터였던것 같다. 똑같은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무와 팀을 바꿔가며 다양한 일들을 했지만 결국 한 회사에서, 영업/마케팅이라는 큰 틀에서 일했기에 기본 원리는 비슷했다. 사업의 특성, 직무의 특성을 익히는 약간의 적응기간만 지나면 어떻게든 업무는 해결되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윗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았기에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주면 일이 돌아갈지, 상황에 따라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았다. 굳이 힘들게 모든 부분에 100% 전력투구 하지 않아도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 힘을 빼야 할지도 알았다. 세상 예민하던 주니어 시절을 벗어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7년이 지나 8년차에 접어든 지금, 나는 편안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어떤 업무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업무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회사의 어떤 업무를 하든 결국 윗사람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면 회사 일은 해결된다. 문제를 파악하고,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획을 하고, 보고를 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면 한 해가 가고 매달 끊기지 않는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그러면 된 것일까? 내가 쓴 보고서가, 내가 만든 기획이 정말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나? 회사의 그늘을 벗어나서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한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큰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시장(Market)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사장(Boss)을 만족시키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끄럽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이렇게 편한 방식에 점점 더 젖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방식에 의구심이 들어도 잡음을 만들기 싫어서 말을 아꼈고, 윗사람이 발표하는 자료에 한 줄 만들어주고 귀찮은 문제를 치우는데 포커스를 두었다. 진정 고객을 알려고 노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후순위가 되었다.


 코로나 19라는 사상 최대의 타성에 젖어있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21년을 시작하며, 더 이상 이대로 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10이라는 숫자, 직업인으로서 10년 차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조심스럽게 붙여볼 수 있는 숫자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까지 이제 겨우 2년의 시간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기존과 같이 편안함에 안주한다면, 2년 뒤에 내가 되고자 하는 직업인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바꿔보려고 한다.

 21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그 방향성은 지금까지 너무나 쉬워졌던 일들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드는 작업이다. 윗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고민하는 작업이고,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2배 3배 자료를 보강해야 하는 작업이다. 시키는 일을 넘어서 일을 만들고 벌려야 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왜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들어?'라는 동료의 핀잔도 들을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올해는 해보려고 한다. 1년 뒤의 오늘,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나에 가까워져 있기를 바라보면서.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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