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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Oct 17. 2020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평상시 나는 말주변이 꽤 좋은 편이다.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점유 비중이 제법 높다. 평정심이 온전히 장착된 상태에서는 발표 불안은 고사하고 그와 비슷한 '불안' 증세 같은 게 있으리라곤 전혀 그려지지 않는 '말하기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 축에 든다.


이처럼 겉보기에 멀쩡한 나는, 장장 16년의 세월 동안 발표 불안의 고통 속에 살았다.


긴장감에 염소 목소리가 나오거나 얼어붙어서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거나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횡설수설하기도 하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도 하는 증상들, 발표 불안이다. 또 나처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짱한데 속이 썩고 있는 '나만 느끼는 불안 증세'도 발표 불안이다. 나는 특히나 발표 시작 전 불안 증세가 심각했다.


'불안 증세'의 정도는 매번 달랐다. 그리 크게 힘들지 않게 지나가게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아 조금 힘들다' 정도, 또 어떨 때는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쿵쾅 거리고 땀 때문에 등이 뜨근해지기도 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밀려오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직서 파일을 열어보곤 했다.


업무 보고 때 긴장을 한다고 해서 큰 불이익이 있을 것도 아니다. 신사업 발표나 기획서 발표, 시장분석 발표는 내용이 중요하지 내가 긴장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사람들도 딱히 없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못 견디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한없이 더 쭈글쭈글 해지곤 했다. 불안 증세가 가라앉고 일상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 긴장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왕멍충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기 직전 분당 정자동에 있는 IT 회사를 다녔는데 매주 월요일 오전이면 부서 전체 주간 회의가 있었다. 회의는 간단했다. 준비해둔 자료를 보면서 각 지역 담당자별로 지난주 업무에 대해 부서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회의가 불편했다. 내 순서가 오기 전 '발표 시작 전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다 못해 터질 것만 같고.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을까 신경이 쓰이고 그 와중에 양 뺨은 조금씩 달아오르고 침이 마르고 헛기침이 나오고.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아, 정말이지 단순한 업무 보고였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나 긴장했을까.


내 차례 전, 공연히 핑계를 만들어서 회의실 밖을 나갔다 오기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얼굴이 붉어졌나 확인을 하곤 했는데 어쩌다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게 되면 한심함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긴장하면 배가 아팠다. 머리가 아파올 때도 있고 심지어 등이 가려울 때도 있었다. 발표불안은 심리적인 불안을 넘어서서 물리적으로 통증을 주었다. 등이 가렵다니. 에혀.


그때 같이 회의에 참석했던 같은 부서 동료들이 이 글을 본다면 말도 안 된다며 웃을 것 같다. 긴장한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그 회의는 그냥 '일상 업무'였다.


그런데 이 불안 증세는 특이한 데가 있다. 내 순서가 끝나거나 불안해하던 그 '자리'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증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화장실이 급해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볼 일이 끝나면 조금 전 내 상태가 기억도 안 나는, 그런 상태와 비슷하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나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제대로 마음먹고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으련만. 그 자리 그 순간 그 시간이 지나면 호흡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 뛰던 가슴이 금세 진정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한 번에 가시기도 한다.



일상에 지장이 있거나 통증이 지속되는 그런 류의 병도 아니고 죽을 듯이 힘들다가도 그 자리만 벗어나면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 상황이 반복되면 또다시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되는, 그런 병이다. 발표 불안이라는 게. 그래서 해결되는 과정이 더디기도 하고 그래서 오랫동안 끌어안고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더 악질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학교를 다닐 때도 불안 증세는 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도망갈 구멍'이 있었다. 회사는 사직서를 내면 되고 학교는 자퇴를 하면 되니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라는 생각에 벼랑 끝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지는 않아도 되었다.


"너무 힘들면 그만 두자."


전자 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신나게 일할 때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광고 기획 일을 할 때도, 방송국에서 스페인어/영어 자막 업무를 맡아 너무너무 재밌게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입학시험 준비에서부터 마지막 면접까지 공을 들이고 들여서 합격한 대학원에 다닐 때도 나는 이놈의 발표 불안 때문에 직장과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러다 막다른 길에 들어선 상황이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과 한국에 법인을 설립해 대주주 '대표 이사'가 된 것이다.


발표 자리가 무진장 많아졌다.


여러 대외 행사에서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로 업무 관련 발표를 하게 되었고 브랜딩/마케팅 관련 외부 강연 자리까지 다니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말을 꽤 잘했다'. 그런데 발표 불안 증세는 더 심해져만 갔다. 뭐라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힘들 때 열어볼 수 있는 사직서 파일도 없었고 언제든 힘들 때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학원을 알아봤다. 스피치 학원이 많고도 많더라. 책을 찾아봤다. 스피치 관련 책들이 많고도 많더라. 책을 10권 이상 읽고 스피치 학원을 다녀보아도 큰 변화가 없었다. 불안 증상을 '이론적으로' 더 의식해서인지 고통이 더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지인분의 소개로 '발표 불안 해결사' 원장님이 진행하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극심한 발표 불안을 이겨낸 원장님이 '발표 불안 극복'을 주제로 만든 강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스피치 학원이긴 했는데 수업 내용은 대부분 '자존감 회복'에 가까웠다.


수업 내용은 이랬다. 발표 불안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 '트라우마'의 시작점을 찾아낸다. 내 불안 증세를 조금 객관적인 시각에서 '원인'을 분석한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잘하고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심어준다. 수업을 참석한 사람들끼리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서로 격려한다.


꽤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증세가 완전히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또다시 불안 증상이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이 발표 불안 해결사님 덕분에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스피치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올바른 발성을 연습을 하고 호흡법을 배우고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발표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은 내 발표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중심에 두고 '나'에게 질문을 하면서 나는 왜 그리 긴장하는지, 어떻게 언제부터 왜 그런 증상들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또 살펴보는 해결사 원장님의 수업이 내게는 방향이 맞는 것 같았다.


나만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를 분석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결사님 수업 수강생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 메세지가 하나 올라왔다.


'강남역에서 발표 모임 진행합니다. 15명 모집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지원해주세요'


망설이다 참석 지원을 했고 한 달 후 시작된 이 모임에서 발표 불안 극복계의 초고수님을 만났다. 내 인생의 큰 행운 중 하나다, 이 모임과 모임 리더 초고수님을 만나게 된 건. 수님과 함께  1 동안의 모임,  과정 중에 나는 비로소 16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동시에 나의 발표 불안 연구  챕터가 완성되었다.


그러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게 된 걸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이다. 괴로운 시간을 10년이나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불안 증세로 힘든 나날을 보낸 중에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건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던 충동'이었다.


나는 일하는 게 참 좋다. 회사를 다닐 때, 대체로 신나고 즐거웠다. 어느 조직이나 나름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왜 저 자리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은 상사도 만나게 된다. 업무가 과중할 때면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기는 어디인가 타임이 올 때도 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어느 곳을 가도 일정한 숫자만큼의 이상한 사람들은 존재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보다, 이런 곳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배우게 되고 알게 되고 애정을 쏟고 열정을 담아서 어떤 일을 하나 해냈을 때 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악질의 발표 불안이 그 만족스럽고 신났던 내 직장 생활에 큰 걸림돌이었다. 직장 생활뿐만 아니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발표 불안 고통에 너무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 다닐까?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솔직히 얼토당토않은(헐, 이 표현을 글로 써보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말이었다. 대학원은 입학하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학시험에 나와 참 사이가 좋지 않은 수학이 포함되어 있어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에세이와 영어 시험, 인터뷰 준비에 만만치 않은 세월을 보냈다. 합격 통지 이메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발표 불안 '따위'로 그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했다는 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발표 불안에 대해 글을 쓰겠다 결심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표 불안 증세에 한없이 쪼그라드는,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자신을 끌어안고 끙끙 앓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게다. 발표 시간이 지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도중에 이까짓게 뭐라고 그리 벌벌 떨었나 자괴감에 고통받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게다. 내가 수백 번도 더 느꼈을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충동에 시달리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게다. 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을 수 있다, 완치가 가능하다, 온전히 극복이 가능하다고.


'지기지기(知己知己) 스피치 스쿨'이라는 제목을 하나 만들었다. 중국 전국시대에 지어진 병법서 '손자'에 나오는 한 대목,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에서 착안했다. '나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의 발표에도 마음이 위태롭지 않다'. 이 주제로 책도 써보고 발표 모임도 만들어 보고 싶다. 우선, 내 발표 불안의 원인을 들여다 보고 나를 살펴보고 분석한 후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 차근차근 극복해나갈 수 있는 과정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발표 불안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분들, 다음 장 기다려주시라. 서론은 여기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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