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는 현실 그 자체다
'같이 산다'는 게 말 자체로 워낙 훅 치고 올라오는 뭔가가 있어서 호감이나 사랑이 가는 대상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 이 말 하나 더 보태지면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게 되기도 한다. '이 사람이랑 내가 같이 산다고?'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어떻게 살 게 될지'에 대한 이미지들이 쑥쑥 치고 들어오면서 입체적인 사고를 할 때 써야 할 에너지를 미리 마구 써버린다.
친구가 있다. 마음에 든다. 코드가 잘 맞다. 독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친구와 같이 살면 어떨까? 하는 순간 한집에서 같이 밥 먹는 장면, 각자 잘 곳은 어떻게 정할까, 집은 어디로 구할까, 퇴근하고 같이 맥주라도 한 잔 하게 되면 좋겠다 류의 생각들로 꽉 찬다.
연인이 있다. 너무 좋다. 같이 살고 싶다. 이 사람과 같이 살면 어떨까? 데이트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함께' 돌아갈 집이 생긴다니, 휴일 오전 같이 늦잠 자고 일어나 예쁜 접시에 브런치 만들어서 향이 좋은 커피 한잔 곁들여서 두는 상상도 하고. 퇴근 후 소파에 같이 누워서 영화 한 편 같이 보면서 속닥속닥 대화 나누는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참 예쁘고.
결혼을 생각한 상대가 있다. 부부가 된다고? 내가 남편이 돼?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니. 아이는 몇 명을 낳을까?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침대는 어떤 걸 고를까? 시어머니가 생기고 장인어른이 생기고. 사회적 신분이 '기혼자'로 바뀌는 그 기분은 어떨까? 결혼식은 어디서? 누구를 초대할까? 수백만 가지 생각들이 가지를 치고 치다 나무 한 그루로 숲을 만들 지경이다.
같이 산다는 건 내 생활공간으로 상대방이 들어오고 그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 안에 내가 들어가게 되면서 서로의 일상 속 현실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샴푸를 쓰는지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치우는 사람인지, 나는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사람인지, 나는 화장실을 주로 아침에 가는지 아니면 자기 전에 가는지, 나는 옷이 몇 벌이나 있는지도 다 공개되는 그런 것이다.
'같이 살기'는 꽤나 정서적으로 먼저 다가온다.
'저 사람과 같이 살면 어떨까?'
'저 사람은 내가 같이 살만한 사람일까?'
'같은 집에서 살면 불편하지는 않을까?'
'저 사람과 내가 한집에서 살게 된다고? 으아아아아!'
'잠들기 전까지 같이 놀면 재밌겠다'
'저 사람과, 저 친구와 같이 살겠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 하실까?'
타인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착각은 '같이 산다는 것'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가 원체 강렬해서 생각만으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솟아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같은 집에 살게 되면 헤어지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 더 가까워질 거 같아.
헤어지는 아쉬움이 없어지지만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도 없어진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덜 심심하겠지.
덜 심심하기야 하겠지만 혼자 살 때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옅어진다.
집안일이 반으로 줄 거 같아.
지저분해지는 속도가 두 배로 늘어난다.
혼자 사는 집이 사람 사는 온기로 채워져 따뜻해질 거 같아.
사람은 온기만 뿜어내는 존재가 아니더라. 냉기도 품고 있고 살벌한 공기도 뱉어 내고 독설도 장착되어 있고.
지금은 종종 부딪히고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같이 살게 되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서로 맞춰가게 될 거야.
글쎄, 잘 모르겠다. 따로 살 때는 서로 부딪혀서 생긴 흠집에 약을 바를 시간이라도 있지만 같이 살게 되면 긁힌 데 또 긁히다가 상처가 깊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더라.
동거는 현실이다. 같이 쓰는 샴푸가 혼자 쓰는 것보다 3배 빠른 속도로 닳아 없어지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고 내가 사 온 사과 5개 중 겨우 하나 먹게 되고 아침에 먹으려고 전날 밤 냉장고에 고이 넣어둔 요거트가 밤 사이 사라져 있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예상치 못한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맡게 되기도 하고. 나는 상대방보다 현저히 적게 먹는데 식비를 이렇게 계속 반반 부담할 것인지. 공동으로 쓰는 생필품, 나는 얼마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리 자주 새로 사야 하는지. 내가 쓰지도 않은 내 물컵이 왜 싱크대에서 자주 발견되는지. 저 사람은 왜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발을 안 씻는 건지. 왜 이불 빨래를 며칠에 한 번씩이나 해야 하는지.
동거는 지극히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