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죽음의 시기를 선택했다.

연명치료 금지 서약을 하고 왔다. 남은 이가 죄책감 느끼지 않도록.

by 올망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중환자실에 계셨다. 본래도 중환자실에 면회는 일반병동보다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COVID-19으로 인한 거리두기까지 겹치면서, 아주 제약이 많은 면회만이 가능했다.


예를 들자면, 가족 중에 사전에 등록된 한 명만 지정된 시간에 면회가 가능했다. 거기에 처음 입원시켜드린 보호자가 그 한 명으로 당첨되었고, 중간에 변경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덕분에 밤에 일을 하고 있던 엄마가 낮에만 가능한 면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입원도 면회도 모두 가족 중에 가장 감정적인 연대가 없는 엄마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할머니는 혼자 거동도 어려웠던 데다가, 할아버지가 아프신 것조차 할머니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자연적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식들이 뱉은 문장들로 결정되었다.

연명시술은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있는 환자들을 산소호흡기 같은 기계장치로 호흡만을 유지시켜 줄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들은 환자가 그런 상태임을 보호자에게 알리고, 더 이상의 시술을 중단할 수 있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일주일을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는 연명시술 중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한마디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좌우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그리고 이모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단다.

"이모, 엄가 이 얘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희 엄마도 짐작하고 계실 거야. 아무리, 기력이 없어도, 너희보다 어른이야.

너희가 알려주는 걸 기다리고 계실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얘기해."

이모할머니의 그 말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편히 보내주라고 했다고 했다. 남편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채로.


엄마가 내게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전했을 때는, 이미 의사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집에 내려올 준비를 하라고.


할머니가 아실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준비시켰던 거였다. 엄마는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 가지 교육으로 생명이 존중받아야 할 아주 귀한 것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마치 생명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학습된다. 낙태, 장기 이식, 연명시술 거부, 안락사와 같은 것들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아빠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 나와 동생 때문에 자주 죽음에 노출되었다.

양가 모두 장수하는 집안이었다.

그렇지만, 큰 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여러 차례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들을 견뎌내고도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작은 아이는 국민학교 입학과 동시에 소아 당뇨로,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신장을 투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더 병원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인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자주 대화했다.



나는 일찌감치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장기기증은 서약을 하더라도 마지막의 순간에 유족이 반대하면, 기증을 할 수 없다. 더욱더 부모님께는 언젠가 동생이 이식을 받는다면, 우리도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이미 본인들의 장기가 자식에게도 줄 수 없는 지경이었던 엄마, 아빠는 서약은 못하더라도 큰 아이의 서약 정도는 이행해 주겠노라 했다.

내가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는 남편에게도, 내가 서약을 했으니, 내 죽음 이후에는 선택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해두었다.



엄마는 나와 그런 대화를 수없이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그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할아버지가 연명치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한 그 순간에 대해 나에게 계속 얘기했다. 애정 하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그의 죽음을 결정한 것 같은 죄책감. 자꾸 그 죄책감이 엄마를 짓누른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확률이야 낮겠지만, 그래도 그런다면, 나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말해줬다.

"엄마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의 살아 있을 때의 뜻을 존중해주는 거야.

요즘은 내가 살아있을 때의 뜻을 기록해둘 수 있으니까, 서약해둘게.

엄마는 그저 내가 선택한 걸 지켜주는 거지, 엄마의 의사로 내 생명을 단축시키는 건 아니야.

누구도 곡해하지 않도록 남겨둘 거야."

"..."

"만약에, 엄마도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자주 얘기해주면 좋겠어.

기록이든 수다든 좋으니, 건강한 동안 얘기해줘"


할아버지를 보내 드리고는,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엄마의 마음들을 복기했다.

누군가의, 그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는 무서움.

아버지가 죽었지만 아들이 새로운 삶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없어졌다는 허탈함.

어머니의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짜증 같은 것들.



그 어떤 것도 다시 발생했을 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두 감내해야 하는 것일 뿐.


다만, 내가 나의 죽음의 방식을 사전에 선택했다는 걸 남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남은 사람들은 최소한 나의 죽음을 바랐다는 죄책감 정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지하철에서 연명치료 금지 서약을 어디서 할 수 있는지 검색했다.

그리고 그게 내일 출근하는 길에 가능한지 동선을 확인했다.

다행인지 건강보험공단은 회사 근처에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 상냥한 내 동료들은 내게 마음이 괜찮은 건지, 점심을 함께하면서 위로를 건네고 싶어 했다.

굳이 조문도 못 오게 해서, 그들은 더욱이 위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한사코 사양하고 건강보험공단에 갔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30대 중반의 사람이 그런 서약을 하러 왔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는지 민원실로 안내했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순서가 되자 연명치료 금지 서약을 위한 별도의 민원실이 따로 있다고 알려주었다.

별도의 민원실로 가니, 아주 한산했다.

하긴, 불과 1~2년이나 된 제도이던가.


이 민원실에 계신 분들은 나를 보고 당황했는지 “여기 연명치료 금지 서약하러 오는 곳입니다.”라고 했다.

알고 있다고 하자, 젊은 분이 오시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놀랐다는 말과 함께 안내 사항을 친절히 말씀해주었다.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나는 긴 병에 효자 없고, 부모 역시도 자식의 간병에 지치는 것을 보았다.

엄마들이 자식을 떠올릴 때, 자기 자신을 떠올리는 것과 동일한 부위의 뇌가 자극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간병에 지쳐간다.


더 나아지는 기술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루 이틀 기대를 하고, 신장을 이식받을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AB형이니 그 확률은 더욱 높다고 고대하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고통은 스스로가 아픈 것과 차원이 다르다.

오죽하면, 환자 가족을 위한 우울증 치료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까.



의사가 판단해도 가망 없는 내 숨을 길게 붙여 놓고자 남은 이들의 돈과 시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줄어가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이 나의 치료를 더 이상하지 않도록 선택할 때, 가능한 최소한의 죄책감만 느꼈으면 좋겠다.

나의 의사를 생전에 정확하게 표현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이런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 민원실에 근무하시는 분들에게 공유하지 않은 것은, 내가 오랜 간병에 지친 사람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화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