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에는 재산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다.
나는 회사 일로 좋은 호텔을 갈 일이 종종 있다. 그런 공간에 가면, 나는 어려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간에서 나만이 소외된 기분이 든다.
모두가 호텔 내부에서 어디에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나는, 호텔 회의실에 구비된 커피가 어떤 맛인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이따금씩 확인해야 한다. 호텔에서는 우산을 빌려줄 수 있는지, 체크아웃하고 난 나의 짐을 맡아주기는 하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호텔의 가격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수영장을 가면 수건을 주는지, 갈아입고 가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도 아는 것 없이 어리숙한 상태였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익숙하다. 나는 그런 자연스러움조차 어린 시절 부모와의 시간에서 습득하는 유산으로 느껴졌다. 외교관들의 부모 직업은 외교관인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다양한 언어 환경에 노출되는 기회도 물려받겠지만, 나처럼 호텔이나 회의실에서 멍하게 있지 않고 일반 사람들이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에서의 톤 앤 매너가 체화되어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큼이나, 좋은 유산을 받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왔다.
엄마가 할아버지로부터 배려심을 물려받았 듯, 엄마는 나에게 배려심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상대에게 공감하여 배려하는 마음 그 자체보다는 배려하는 방식에 더 초점을 맞춘 나머지, 내가 받은 특별한 유산은 빠른 눈치에 가까웠다. 내가 필요한 상황을 알아차리거나, 상대에게 지금 부족한 것들을 파악하는 재주가 길러졌다.
덕분인지,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까지 더해져, 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치 늘 그 상황이 익숙한 듯 대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은 어느 날부터 엄마 아빠를 향했다. 자각하기 시작하니, 부모님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장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세 사람 중에 배울 것은 늘 있다고 했다. 특출남을 배우든, 반면교사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든.
그리고 아빠는 무기력함과 열등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것만은 물려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기숙사를 제공하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과학고 입학에 코피 흘렸고, 실패하자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가기보다 집에서 멀어서 기숙사에 들어가야만 다닐 수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 거리가 멀어져야만 단점들을 배우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생도 한참 멀리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나와 같은 길을 가려고 했다. 그리고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일찌감치 소아 당뇨 진단을 받고,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에 그 욕구에 제약을 받았던 동생은, 대학 생활에서 그 욕구를 미처 제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 독립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자지 않는 일정을 소화했고, 그 와중에 친구와의 친목은 놓치지 않으려 술을 엄청 마셨다.
그 여파로 쓰러진 어느 날, 신장은 더 이상 제기능을 할 수 없었고, 투석을 시작했다. 그래도 투석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여서, 밤에 스스로 할 수 있어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복막투석을 시작했다.
동생이 대학 가기 전까지의 아빠는 일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였다. 이미 10년이 넘게 놀고 있는 이를 채용해줄 회사는 없었다. 그러나,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자, 나와 동생의 생활비는 각자의 학자금 대출로 충당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엄마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싫었는지 집 근처의 식당 보조로 눌러 앉혔다.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정확히는, 더 이상 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동생이 투석을 시작하며,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두 부자는 집안에 늘 같이 있게 되었다. 아빠에게는 그저 담뱃재를 치울 사람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동생은 그런 아버지가 싫다고 말하며 서서히 닮아갔다.
식당 보조하는 엄마가 집에 들어와 상을 차려줄 때까지 식사를 거른 채로 기다리고, 설거지는 엄마 몫으로 남겨둔 채. 엄마는 자식이 안쓰럽기만 해서, 남편을 향한 한심한 감정은 내려두고, 동생을 위해 살림과 밥벌이를 동시에 했다.
하지만 복막투석은 낮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서 동생이 비록 투석을 하고 있을지언정, 공무원이나 대기업처럼 장애인 전형이 있는 회사에 취업자리를 알아볼 수는 있었다. 하물며 공공기관은 취약계층으로부터 일정 비율 이상 구매해야 하니, 이런 점을 이용해서 아빠와 회사를 차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마저도 아니면 담배 판매권이나 로또 판매 계약이라도 알아볼 수는 있었을 거다.
국가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기 위한 수많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었지만, 그런 걸 활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장의 전기나 가스요금 할인이 있다는 것조차 내가 혜택을 찾아주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나도 조교를 하면서 뇌졸중에 걸린 학생 아버지가 위장이혼으로 아이들이 장애인 편부 하에서 성장하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복지의 혜택을 받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야 국가가 취약 계층을 마냥 손 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동생은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했고, 그걸 시도하는 과정에서 실패했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좌절감에서 회복되어 다시 시도한다. 동생은, 자라면서 회복해서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 누워있는 기간 동안에 바라본 주변의 풍경이라고는, 아빠가 줄담배를 피며 컴퓨터를 하는 모습뿐이었다.
컴퓨터로도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들이 많다. 요즘은 4차 산업 시대가 도래한다고, 특별한 기술 없이도 사진에서 차량의 경계를 설정하거나 동물을 분류하는 일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에는 댓글 알바나, 가게 홍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 뉴스에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고, 대댓글이 달리면 거기에 화를 내며 왜 그들의 사상이 틀렸는지를 가족들에게만 설파하는 아빠의 모습만이 동생이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었다.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혀,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들일랑은 보지 못하는.
말하자면, 청약 뉴스가 그렇게 나오는 동안, 청약 통장 하나 만들지 않고, 왜 부동산 공급 정책이 틀렸는지만 얘기하는.. 세상이 틀렸다고 손가락질만 하는 방국석 키보드 워리어가 동생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런 이유로 무기력을 물려받았다. 무기력함과 동시에 태어나길 낙천적인 동생은,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만 했다. 친구들은 하나 둘 나이를 먹어 직장을 찾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나았다. 그리고 동생은 그들에게 서서히 잊혀 갔다.
그렇게 동생에게 더 이상 즐거움이 입력될 사건들이 없어지자, 다시 신장이 고장 났다. 더 이상 복막투석이 불가능했고, 격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이쯤 되니 동생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더 이상 작은 집안일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생은 남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이에 애니메이션 세상 속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히키코모리 같은 삶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