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의금을 나눴다.

얼마 되지 않는 부의금을 콩 한쪽 나누는 마음으로 배분했다

by 올망


가난은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국가는 말한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평등하다고, 법이 가난을 구제할 여러 가지 수단을 마련해 두었으니 이용하라고.


하지만 가난은 멀리서 예보와 함께 오는 태풍이 아니라, 코 앞에 다가오는 파도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당장 아무 보호 장치가 없이 바닷가에 있던 이들에게는 당장 육지로 나아가는 것만이 중요해서 튜브를 조달한다거나 누군가의 배에 잠시 얹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가난한 이를 위한 제도를 설명해 줄 곳은 9시부터 6시까지 연다. 가난한 이들은 오늘 하루 입에 풀칠하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을 나가 6시가 지나야 집에 오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든다.


구제받을 주민 센터에 갈 시간 따위 없다. 내가 일에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우리 집의 가난은 여러 방식으로 구제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가진 이들은 농어촌 전형을 위해 전입신고를 하기도 하고, 못 가진 이들은 더 못 가진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기도 한다. 더 아픈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의 부모도 가난을 부끄러워하였으며, 얼마나 가난한 상태인지, 동생이 얼마나 아픈 상태인지에 대해서 자식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가 회생할 기회가, 병원비 지출을 줄일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주 오랜동안 가난이 식구들을 좀 먹고 난 뒤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를 학습하는데, 그중에 실패도 포함된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무얼 새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 가난한 상태로 돌아올 거라는 무기력감을 학습했다.


탈출구가 있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다시 식구 중에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파산하게 될 거라는.



그런 집에 상을 치를 일이 생겨도, 부의금이 크게 들어올 일은 없다. 흔히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부의금으로 싸움이 났다 하는 집들은 나눔의 여지가 있는 콩이라도 한쪽 있어야 했다.


이번 장례식이 끝나고는 그렇게 많은 부의금이 남지 않았다. 장례식장의 비용과 안장 비용 등을 겨우 충당할 정도였다. 사람이 무로 돌아가는데 드는 비용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복을 빌어주러 오신 분들은 모두 작은 이모의 회사 분들로, 부의금 역시 모두 작은 이모의 이름 앞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장례식장을 시끌벅적하게 해 준 보답이 이모 앞으로 돌아가야 당연했다. 하지만, 지출한 비용을 제하고 나니, 남는 부의금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고 나니 오지 않는 손님들로부터 받은 부의금들을 어떻게 할지 모호해졌다.


이모와 삼촌들은 통장으로 받은 부의금을 숨기려면 얼마든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자니 손님이 많이 온 작은 이모만, 손님들이 십시일반 품앗이 한 비용을 보은 할 돈이 없어지는 모양새가 되었다.


각자, 오지 않은 지인들의 부의금을 다 내놓고, 장례비용을 다 제외하고, 내놓은 만큼의 비율로 다시 가져가기로 했다.


엄마의 형제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돈으로 즉각 환산할 수 있는 가치는 사실 어느 것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흙수저를 가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 받은 유산이 있었다. 배려심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재산이나 재산을 불리는 욕심, 재주 이런 것들을 물려주는 대신 형제 지간 우애나 가족애는 물려준 듯했다. 서로를 배려했고,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흥부에게 제비가 물어준 박에 들어있는 금은보화처럼 인생역전을 할 정도의 돈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흔쾌히 그 돈을 나누기로 했다. 가장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작은 이모도,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으라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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