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빚이 남겨져 있을까 상속을 포기하다.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던 엄마는, 특별한 경력이 없었다.
요즘 말로 말해 경력이 단절된 부녀자였으니, 인형 눈알을 붙이고 봉투를 접는 부업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장당, 개당 해주는 견적을 주는 일로, 얼마나 돈을 만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남편이, 부모님이, 동생이 모두 빚쟁이인 마당에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보험사 영업사원을 했다.
엄마는 새로이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곧 40대를 바라보던 내향적인 사람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사람은 누구나 어디서나 무언가를 배운다고 했다.
부업 경력을 살려, 많은 사람들에게 보험 소개 우편을 일일이 보냈다. 그런 절박함을 알아챈 건지, 내면에 숨은 영업실력이 있었던 건지, 빠른 시간 동안 보험을 제법 팔았고, 덕분에 할아버지네 집에서 독립할 정도의 돈은 벌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눈치 보지 않을 공간이 생겼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독립했고, 자식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했으니. 엄마가 일을 하느라 집에 없는 동안 하교한 자식들을 돌보겠다 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철저하게 면피 용이었다. 하교하고 돌아온 자식들이 먹을 밥 따위는 없었으며, 집에 있는 동안 피워 댄 담배꽁초들이 가득 담긴 재떨이와 라면 냄비에 겹쳐놓은 그릇들이 바짝 마른 채로 잠든 아빠 대신 우리를 맞았다.
아빠는 그렇게 동굴로 숨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쓰러지는 그 와중에도 엄마는 친정에 한 푼 보태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변변치 않은 벌이의 자식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아이를 맡겨 둔 막내 이모가 건네주는 생활비로 식사를 했다.
얼마 지나 결혼한 막내 숙모가 알아 봐준 주공아파트에 입주하는 걸로 두 내외가 근근하게 생활했다. 잘난 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핸드폰마저 본인들의 명의로 개통할 수 없었다. 통장 개설도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파산신청을 했다 해도 빚쟁이가 아직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이미 파산신청을 했으니 그전에 남겨진 대출이야 법적으로는 무시할 수 있다지만, 채무 이행 업자들이야 법을 무시하기 일쑤였으니 걱정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일랑은 정말 한 푼도 없어서 한정승인을 할지 상속포기각서를 쓸지 결정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속포기 서류 준비는 내가 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썼으니. 한번 해본 거라 쉬웠다. 그때랑 다른 건, 이번엔 온 집안 식구들 걸 대신 쓰고 있었다. 친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살면서 일군 재산이랍시고 상속포기를 종용받았다.
아빠는 알량한 자존심에 그런 아버지의 재산은 필요 없다며 호기롭게 상속을 포기했더랬다. 덕분에 아빠가 우리 네 식구의 서류를 알아서 다 작성했다. 나는 그저 나의 인감증명만 떼서 배달했을 뿐. 하지만 이번엔, 서류 작업이랑은 모두 담쌓은 식구들이었으니 누군가는 대신 해줘야만 했다.
한 번 해본, 아빠가 하면 참 좋으련만, 장인어른에게 좋은 기억이라고 없는 사위에게 시키는 것보다 손주에게 시키는 것이 할머니 입장에서는 편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나마 법을 읽어본 적이나 있는 내가 온 식구의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다.
그렇게 엄마의 형제들은 법 문제에 무관심했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육십갑자 가까이 살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누구에게나 살면서 법을 알아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큰 이모에게는 그 시기가 그러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큰 이모는, 사고뭉치의 빚만 앉고 사는 이모부와 이혼했다. 이모부는 결혼 생활 내내 술을 달고 살았는데, 명절에 만나면 누군가가 늘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렇게 일평생을 살던 사람이 이혼 후라고 달라지지 않았고, 해장국을 끓일 아내가 없어진 것이 크게 달라졌다. 해장국 대신 해장술을 연신 들이켜댄 탓인지 뇌졸중을 얻었다.
덕분에 갓 결혼한 이모의 큰 딸은, 신혼집보다 아버지의 병간호를 더 많이 다녔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한다는 그 집 아들은 아버지의 빚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거라고는 빚뿐이겠다 싶은 걱정이 든 이모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했던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할머니는 파산 신청을 하던 당시에 명백한 가해자라도 있었지만, 큰 이모는 파산의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법리사에게 의뢰할 작은 돈도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시간을 들여 파산 신고를 위한 서류들을 떼고, 신청하는 절차들을 알려주고 하면서도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다.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만 수십 번쯤 들었을 뿐이다. 공기업에 가고 싶다고 공부를 하던 이모의 아들은,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며 필요한 서류를 읊어줄 때, 본인과 상관없는 이야기인 양 굴었다.
그저 본인이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라도 될까 싶어 취업에 차질이 생길까 그것만이 관심사였다.
이모의 딸은 그저, 직장생활에 병간호에 함몰되어 있느라 다른 것을 신경 쓸 잠깐의 시간도 없었다. 신혼 생활을 즐기는 것은 고사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빚이라는 파도를 바라보지 못했다.
당장 발바닥에 나는 피들을 훔쳐내느라 바빴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