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나온 할아버지가 그립다.
사람이 죽은 뒤에 해야 하는 서류 작업들이 마무리되었을 즈음 꿈을 꾸었다.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난 후라 제법 고단했었는지 아주 잠깐 퇴근길 지하철에서 잠이 들었을 때였다.
오래된 기차역에 갑자기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에 올라타니, 그 량 맨 앞의 창가 좌석에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생전에 190cm가 넘는 거구여서, 뒷모습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단숨에 뛰어가 아는 척을 했는데, 복도 쪽 좌석이 젖혀 있었다.
키가 작은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다리를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포갠 상태로,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본 적 없는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 옆좌석의 등받이가 앞으로 젖혀져 있었다. 나는 그 좌석이 불편해서 두 분이 좁게 앉아 계시나 싶었다.
"할머니, 좌석 등받이 펴드릴게요. 편히 앉으세요" 하며,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생전에 없던 큰 목소리로,
"이 기차를 왜 탔어, 빨리 내려!" 하며 성화셨다.
나를 떠미는 그 힘에 인사 한마디도 못하고 얼떨결에 기차를 내린 뒤, 다시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내게 손을 흔드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꿈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했다.
그러면서도, 꿈속의 기차역에서 떠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데려가는 것만 같아서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끅끅 울었다.
이 상태로 꿈을 깨면 정말 할머니의 부고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 되고 나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목적지까지는 가지도 못한 지하철에서 일단 내려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차마 꿈 얘기를 할 수는 없고, 별일 없느냐는 안부전화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가 입원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다. 자식들은 밥벌이를 하거나, 그네의 자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할머니를 모시고 살기를 꺼렸다. 다행인지, 할머니 내외가 함께 살던 집은 할머니가 공공임대받은 아파트라, 할머니 생전에 가실 곳은 있었다.
나라에서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해주어, 매일 반나절씩은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식들은 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보호받으시길 바랬다. 하지만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들과의 삶이 불편하다고 했다. 특히나, 일손이 부족해서 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기저귀를 채우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요양보호사가 퇴근한 어느 날, 할머니는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바닥의 대변과 함께. 엄마는 화장실을 가시려다 넘어져, 더 움직이지 못하셔서 벌어진 것으로 추측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그 사이에 나는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차마 꿈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게 본인의 꿈 이야기를 했다. 공교롭게 엄마도 그날 꿈을 꾸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꿈에서 엄마에게 손짓하는.
엄마는 "아버지, 엄마 마중 나온 거라면, 나도 좀 데려가" 하며, 하염없이 울었단다. 다행인지, 할머니는 큰 탈 없이 퇴원했다.
중환자실에서 퇴원했을 때에는 보살펴줄 자식들도, 간병인을 채용할 여유도 여전히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싫어하던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할머니 기력을 찾아주기 위한 링거도, 치료를 위한 주사도 필요했다. 할머니는 바늘을 무서워했고, 간호사들은 주사를 놓을 때마다 할머니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자식들이 병문안을 갈 때면, 저 년이 나를 때렸다는 둥, 저 년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둥의 말을 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주삿바늘이 아프다는 얘기였는데,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 할머니는 본인을 아프게 하는 주사를 놓는 이들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짓고 미워할 정도로 정신이 어려져 있었다. 그러고는 무작정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자식들은 시간마다 오는 전화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남편은 그런 할머니를 보며, 자신의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할머님은 반신이 마비가 된 상태로 오랜 기간을 지내셨다고 한다. 그래서 저 멀리 바닷가에서 서울까지 모시고 와 아버님과 어머님이 병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할머님은 내 집 두고, 이렇게 빌딩이 빼곡한 데서 못 사시겠다고 툭하면 그 불편한 몸으로 기차를 타겠다고 하셨다며. 남편이 아버님에게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얘기하며, 할머님 생각이 난다고 하니 아버님이 아가 앉아보라며 얘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는 효자가 살았다. 매일 세족식을 하는 그림자가 바깥에 드리워, 마을 사람들은 아들이 어머니 발을 씻겨주는 줄 걸로 착각했더랬다. 사실은, 그 어머니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아들을 효자라고 칭찬했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자식들이 무슨 일을 하든, 부모님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는 게 효자라고. 그러니, 할머님이 집으로 오시게 한 건 잘한 일이라고 위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