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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Oct 09. 2017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p.15 프롤로그 
매출 성장보다 더의미 있는 것은 누가 음반을 사느냐였다.... "여자애들이오!" 그렇게 말하는 이언 청의 목소리에는 사막을 헤맨 끝에 우연히 물줄기를 만난 사람의 '살았다'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여자애들이 다시 레코드를 사기 시작했다면 정말로 상황이 바뀐 겁니다." 저커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디어와 음반 업계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레코드판이 다시 인기를 끄는 놀라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보기에 레코드판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좀 더 거시적인 현상이다. 바로 '아날로그의 반격'말이다.     

2년 전쯤에 LA의 산타모니카 해변에 놀러 갔다가 상점이 많이 모여있는 3rd Street Promenade에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물건을 팔 것 같은 편집샵에 들어갔다 (옷, 각종 선물 거리, 전자제품 등등을 팔고 있었다). 매장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넓은 코너에서 LP판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LA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기념품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판의 종류가 너무 많고 새로 나온 음반들도 LP판으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 이상하다고 느끼고 잊고 있다가, 작년엔 현대카드 비닐&플라스틱에 처음 가봤다(이전엔 밖에서 사진만 찍음). 들어가 보고 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생 때 이후로 사지 않았던 테이프와 초등학교 때 이승환 이오공감 앨범 이후로 사지 않았던 LP판이 새로운 앨범으로 나와서 팔리고 있었다.


뭔가 변화가 있구나. 싶긴 했지만, 이 변화가 수요를 통해 발생한 변화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돈이 많은 누군가의 개인 취향이 반영되어 억지스러운 시장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짐작했고,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P.65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 레코드판
아티스트들은 오래된 테이프 기계와 빈티지 스튜디오 장비들로 실험을 시작했고 한때 이용했던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비평가와 팬들은 이 앨범이 소리가 다르다(더 가슴 저리고, 생생하고, 유기적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업계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P.69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 레코드판 
스콧이 엔지니어링을 맡았던 데이비드 보위의 명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의 첫 곡인 Five Years를 보자. "그 곡의 마지막은 정말 감동적이지요." 스콧이 말했다. "보위는 스튜디오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정말로 눈물을 흘렸어요." 요즘이라면 사운드 엔지니어는 보위가 마음을 다해 부른 갈라진 소리를 프로 툴스로 매끈하게 다듬을 것이다. 사실 그 곡의 종결부를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보위의 떨리는 목소리인데도 말이다. 

P.137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 필름 
폴라로이드는 지난 10년간 필름 시장이 꾸준히 축소될 것이라 예측하에 계획을 세웠지만 수요는 더 줄지 않았고 매년 2500만 개의 필름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모두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소멸시킬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갑자기 사람들이 필름만의 느낌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어요." 캡스가 말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질이라서 화질이 개선되기만 하면 디지털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사진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죠. 더 이상 가족 앨범은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어요. 손으로 만지거나 흔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지요." 
나는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갈아탄 이후 사진을 1만 5천 장 이상 찍었지만 그중에서 인화한 것은 극히 일부였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막는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후 모든 과정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날로그 사물과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일부 성공을 거둔 이유로 꼽히는 것은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뭔가 다르다"라는 점이다. LP판이 전달하는 소리와 감정, 필름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색감 등등은 오차가 없으려고 노력하는 디지털과는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이 다름에 돈을 낼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현재 이 책을 봤을 땐 아날로그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규모의 시장은 존재한다. 

p.56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 레코드판 
LP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다운로드가 출현한 1990년대 말부터 CD가 하향세로 접어들자 음반사들은 가격을 대폭 낮췄고 그 바람에 CD는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LP구매자들은 가격에 민감하지 않았다. 그들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에 기꺼이 20달러 이상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고, '레코드점의 날'에 판매되는 특별 한정판에는 두배의 돈도 지불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그 대가로 물리적인 자산을 얻기 때문이다.... 워너 뮤직 그룹의 영업관리 부사장 빌리 필즈는 LP레코드판이 과연 매출 10억 달러를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지만 중요한 수익 창출원인 LP의 판매가 둔화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LP의 단위 수익은 우리가 파는 어떤 제품보다 높습니다. LP는 두 자릿수 후반대의 견고한 이익률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장이 얼마나 좋은 시장이냐 라는 부분에서는 의문이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 시장에서 LP판 시장은 사라지지도 않았었고 현재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률이 높은 시장이라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덜한 시장이라는 뜻이고, 경쟁이 덜한 이유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LP 시장이 성장하는 스트리밍 시장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쓰인 것은 아니다. 

연평균 10%씩 줄어드는 음반시장(Physical)


p.200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 인쇄물 
온라인 간행물의 아날로그 버전이 출간되기도 한다. 물론 요즘 정기간행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매체가 거의 없기는 해도 저비용 생산과 즉시 유통으로 성공한 디지털 출판의 성공담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아날로그는 디지털 출판사들이 겪는 온갖 문제들, 즉 engagement, stickiness, discovery 등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만약 종이 출판과 디지털 출반의 등장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종이 출판이 오히려 디지털 출판을 파괴하는 혁신 기술로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p.214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 인쇄물 
"저는 아이패드와 디지털 편집을 위한 개발 미팅에 수없이 참석해봤어요. 사람들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죠. 만약 누군가 회의실에 들어와서 '내가 완벽한 포맷을 찾았습니다! A4용지를 여러 장 인쇄해 묶으면 손으로 넘기며 훑을 수도 있어요!'하고 말하면 아마 다들 '휴, 다행이다! 드디어 정답을 발견했구나!'라고 말할 겁니다.... <이코노미스트> 인쇄판의 내용이 잡지사의 웹사이트나 앱에 올린 내용과 완전히 똑같더라도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 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패드류는 확실히 잡지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에 100%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 논의 이전에 잡지라는 것이 현재의 형태로 계속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어릴 적부터 버즈피드의 짧은 기사,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커온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있을 시점에 잡지는, 콘텐츠는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는 또 새로운 고민일 것이다. 그 고민이 먼저일 것이기 때문에 이 논의는 인쇄물의 잡지와 아이패드 앱의 비교는 약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었다 (길게 적혀있지만 알쓸신잡에서 김영하가 인쇄 박물관을 갔다 와서 하는 감성적인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생각이었). 


신문의 기름냄새는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책을 쭉 읽을 때 다양한 아날로그의 반격 사례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몰스킨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 디테일한 사례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시놀라 시계도 처음 들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책의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프롤로그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도 책에 나오는 사례를 다 읽고, 프롤로그를 다시 읽기를 추천한다. 


p.21 프롤로그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구매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그러나 아날로그의 반격은 그와는 다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혁신의 과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화가 불가피하다는 가정뿐 아니라 디지털 경제의 핵심인 확실성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디지털화의 흐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이 아닌 물건이나 아이디어가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생각은 실리콘밸리와 다른 스타트업 허브에서 확산시키는 파괴적 혁신을 우상시하는 기술 낙관주의의 내러티브에 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술 진화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열심히 습득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들 기술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에만, 그리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수준에서 디지털 기술과 겨룰 수 있는 경우에만 살아남을 것이다.
... 우리기 직면한 선택은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가 아니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언어일 뿐이다. 1이냐 0이냐, 흑이냐 백이냐, 삼성이냐 애플 이냐 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허구다. 실제 세상은 흑도 백도 아니고, 심지어 회색도 아니다. 현실은 다양한 색상과 수많은 질감과 켜켜이 쌓인 감정들로 이루어진다. 현실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고 희한한 맛이 난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흠도 되지 않는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그런 복잡함에서 나오지만 디지털 기술은 그 복잡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가 그 어나 때보다 중요한데도 말이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현실의 산물로서 디지털 기술이 던져주는 어려움들에 직면해 그것들로부터 장점을 취한다. 각 기술은 서로 다른 용도를 충족시키고 서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아날로그의 반격>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가오는 포스트 디지털 경제의 모델이다. 그 모델은 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되, 기술의 과거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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