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 펴고 첫 장사

by 걱정인형

초등학생 때 나는 살짝이나마 장사의 맛을 본 적이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동네에서 가장 큰 중앙공원에서는 알뜰시장이 열리곤 했다.

주말이면 그곳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여드는 작은 시장이 되었다.


알뜰시장은 중앙공원의 차도를 막아 차가 없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각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집에서 쓰지 않는 새 물건이나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중고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였다. 거래는 무조건 현금으로만 가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근마켓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도 그 시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보기로 했다.
알뜰시장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한 일은 집에서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몸집이 커져 입지 않는 옷과 신발, 엄마가 더 이상 집에 두지 않겠다고 결정한 소소한 소품들을 하나씩 거실 한복판으로 옮겨두는 일이었다.


그다음 A4용지를 작은 네모 크기로 잘라 1000원, 2000원, 3000원처럼 가격을 정해 각 물건에 테이프로 붙였다. 물건을 살 때 가격을 한눈에 보고 편하게 고르길 바라는 나름의 배려였다.


판매할 물건 외에도 꼭 챙겨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만 원이나 오천 원을 받을 것을 대비한 거스름돈, 물건을 담아갈 봉투들, 물건을 펼쳐놓을 넉넉한 돗자리, 혹시 생길지 모를 쓰레기를 담을 봉투까지. 배낭에 이것저것 챙기고 나면 준비는 끝이었다.


알뜰시장이 열리는 아침, 나는 여린 피부를 햇빛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머리에는 썬캡을 썼다. 어제 미리 챙겨둔 배낭을 메고, 집에서 공원까지 산뜻하게 갈 수 있도록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집을 나섰다.


알뜰시장을 함께 나가기로 한 단짝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가볍게 타며 신나는 마음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하면 알뜰시장 관리 부스에 줄을 서서 판매 위치 번호가 적힌 종이를 받아야 했다. 친구와 나는 연속된 번호를 받아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은박지색 돗자리 두 개를 나란히 붙여 펴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그 위에 가방을 올려두었다. 신고 있던 인라인 스케이트는 벗어 돗자리 뒤쪽에 가지런히 놓고,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장난감, 옷, 신발을 순서대로 펼쳐 놓고 돗자리 뒤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돗자리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고

그제야 진짜 장사가 시작된 것 같았다.


외향적인 성격의 친구는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편한 티랑 바지 있어요. 보고 가세요.”
라며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나는 그런 친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 목소리에 힘입어
“한번 보고 가세요.”
를 연신 외쳤다.


지나가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거 몇 살 입히면 맞을라나?”
“남자애도 입혀도 되나?”
“이거 조금 더 싸게는 안 돼요?”


쏟아지는 질문에 나와 친구는 번갈아 대답했고, 구매를 결정한 분들에게는 미리 준비해 온 봉투에 물건을 담아 건네며 말했다.
“예쁘게 입으세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갔고, 뙤약볕 아래에서도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호객행위를 이어갔다. 오전부터 시작한 장사는 어느새 돗자리 위 물건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기 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지금까지 번 돈을 모아둔 봉투를 열어 조심스레 돈을 세어 보았다. 대부분의 물건을 2~3천 원에 팔아 번 돈은 약 3만 원. 하지만 어린 시절, 땀 흘려 번 돈을 손에 쥐어본 경험은 노동 그 이상의 가치였다.


어른이 된 지금,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때와 같은 감정을 느끼긴 어렵다. 그래서 가끔 차 없는 거리로 막힌 그 길에서 알뜰시장이 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의 나처럼 돗자리 위에 앉아 열심히 물건을 팔고 있는 아이는 없는지 괜히 둘러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