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ngaaq Travel#1
12년의 여름의 어느 일요일 오후에 P와 나는 세부의 남단에 위치한 올랑고 섬에서 쉬고 있었다. 올랑고 섬은 ‘그 일’을 겪은 다음 날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섬이었다. 망그로브라 불리는 해양식물은 바다에 둥그런 뿌리를 기묘한 형태로 담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과 바다를 얼기설기 기워 놓은 듯한 모양이라 화창한 날씨와 퍽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이 섬에는 아침 일찍 상인들이 타는 배를 얻어 타고 넘어왔는데 ‘그 일’이 있었음에도 또 다시 모터사이클을 빌렸다. 작은 섬이었지만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아직도 여기저기가 쑤셨던 것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 사는 동네였지만 다행히 언덕하나 없는 평원의 섬이었다.
‘그 일’ 은 하루 전 날 벌어졌다. P와 나는, 바이크 한 대를 빌려 시의 외곽으로 떠나려는 계획을 세웠다. 특별한 목적이 있기 보다는 그저 동남아 특유의 번잡함에 지쳐있었다. 사람들이 바글대고, 흩날리는 매연과 내리쬐는 햇볕은 한 없이 공격적이고, 밤이면 온 도시가 술에 휘청거리고... 당연히 서울과 많은 것들이 달랐지만, 또 많은 부분이 같았다. 몇 일간에 걸쳐 도심을 즐겼으니 이제 응당 대자연을 마주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린 그 날 오전을 숙소에 박혀 검색과 조사에 매진했고 도시 외곽에 산 넘어 물을 건너면 나온다는 거대한 호수 ‘비가피트’를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처음 계획은 각각 한 대씩 빌려서 자유롭게 세부의 외곽도로를 질주하는 거였는데, P가 국제면허증을 놓고 오는 바람에 성인 남성 두 명이 한 대를 나눠 타는 다소 없어 보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도 이 장면은 젊은 의사였던 에르네스토 게바라, 즉 체 게바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떠났던 여행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운전도 번갈아 가며 할 수 있고, 대여비도 아꼈으니 차라리 잘됐다싶었다
여행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날씨는 쾌청했고 시의 외곽으로 굽이치는 도로들은 질주를 허하듯 한적했다. 언덕들의 경사도 바이크가 두 명의 성인 남성을 짊어진 채로 딱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가팔라 주었다. 30분 쯤 달리고 나자 슬슬 민가의 비중이 옅어 지고 평원과 산들이 나타났다. 아직은 포장된 도로가 이어져 있던 터라 속도를 꽤 높일 수 있었다. 뭉게구름들이 지평선 너머로 피어오르고 귀에서는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당시로서는 필리핀의 시골길에서 3G가 터지는 걸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될 때라 동네에서 수소문해서 얻은 지도 한 장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번갈아 가며 뒤에 앉는 사람이 지도와 표지판을 열심히 비교해가며 네비게이션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길을 잃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도로의 포장은 듬성듬성해진지 오래였고 현지어로 적힌 표지판들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아주 가끔 화물을 실은 트럭이나, 산간 마을에 사는 주민이 탄 바이크가 지나갔지만 그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했기에 간단한 길마저 물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되는대로 달리다가 결국 포장된 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처음 보는 산길을 가겠는가. 여정을 포기하고 다시금 도시의 환락으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아직 젊던 P와 나의 가슴 속에는 무모한 도전의식이 꿈틀거렸다. 지금 돌아가면 이 순간을 그냥 포기해 버린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거라는 두려운 속삭임이 귀에 맴돌았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언제까지 갈 것인가.
그런 고민과 열망이 교차되던 교차로에서 마침 바이크를 타고 가로지르려는 어느 백인 청년을 만났다. 그는 필리핀에 들어온 지 6개월 되는 스페인인 여행자였다. 다행히 우리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친구였기에 우리의 목적지와 일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 아미고는 자신도 비가피트를 몇 번이나 다녀왔다며 그 자체보다도, 그곳에 도달하는 길이 정말 다채롭고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이제부터 산길이니 바이크로 가기에 쉬운 길이 아니며, 우리 생각보다는 꽤 먼 편이라 과연 해가 지기 전에 거길 보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우려를 덧붙였다. 그도 나름 다이나믹한 여행을 즐기는 이였지만 진심으로 이 위험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우린 잠깐 한국어로 의견을 교환했는데 큰 의견차이 없이 강행을 결정했다. 그때서야 아미고는 씨익 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그래 나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너희는 Real traveller구나” 라는 말을 남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순식간에 반대방향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Real traveller 라는 단어에 한껏 취해버렸다.
도로가 끊기고 나자 바이크를 타는 일이 마냥 신나는 일은 아니게 되었다. 정비되지 않은 돌밭에 엉덩이가 계속해서 크게 들썩거렸고, 시야를 가리는 모래먼지가 자주 일어났다. 산간에 나 있는 진입로 부근에 손으로 지은 것 같은 목조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왠지 모를 촉이 마지막 민가라고 경고 했기에 우리는 오만가지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 바이크의 기름을 보충했고 적당한 가격에 토마토 몇 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어렸을 적 아빠에게 세상에 ‘괴물’이란게 실제로 있는 지 물어본 적이 있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아빠는 그때도 당연히 그런 허무맹랑한 존재를 믿지 않았겠지만 워낙 어린 아들이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득차서 물어보니, 고심 끝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글세...필리핀 같은 곳에 가면 인적이 닫지 않는 산이나 밀림이 워낙 많으니 거기에 살고 있지 않을까?” 괴수대백과사전이 말해주는 막연한 환타지가 아니라 이 대답은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당시의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래서 한동안 ‘당연히’ 필리핀엔 괴물이 산다고 생각했다.
.. 따위의 기억이 떠오를 만큼 외진 곳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 봉오리의 정경은 아름다웠다. 정말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수백 년 간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 그대로의 풍경 같았다. 그리고 저 멀리 정말 거대한 호수 비가피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장엄한 광경을 다른 관광객 없이 독식하고 있자니 정말로 real traveller가 된 기분이었다. 그 감동을 조금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지만 오래 지체할 순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도시로 돌아 가야했다. 우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급하게 왔던 방향으로 바이크를 돌렸다.
사고는 비가피트를 떠난 지 30분 만에 발생했다. 반복되는 돌무더기 언덕을 넘어 다니다가 균형을 잃고 바이크가 옆으로 넘어가 버렸다. 뒤에 타고 있던 나는 몇 군데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운전석에 있던 P는 발목을 삐는 바람에 꽤나 괴로워했다. 딱히 구급키트도 없었지만, 상처도 그럭저럭 참을 만 한 수준이라 조금 휴식기를 갖고 휴지로 피만 좀 닦은 후 재정비를 마쳤다. 다시 출발할 때에도 일단은 P가 운전하겠다고 했다. 나보다 바이크를 탄 경험이 많기도 했고, 자전거와 달리 바이크는 발목에 힘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두 번째로 낙마한 건 침엽수가 높게 솟은 숲을 지날 때쯤이었다. 발목도 성치 않은데다가 두 번이나 넘어진 P는 완전히 멘탈이 무너져버렸고 계속해서 운전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나자빠진 자리에서 일어날 의지도 없어 보였다. 때마침 멀리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새를 잡는 건지 과일을 따는 건지 나무 위로 장대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는 눈빛이 멍하고 괴이하게 뻐드렁니가 돋아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그가 아빠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그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우리의 사고를 목격했으니 도와주러 뛰어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다가오지 않고 그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영어로 크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시선을 우리에게 고정한 채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정말 그의 외모만큼이나 괴이한 장면이었다. 뻐드렁니 돋은 산사람이 장대를 들고 그저 우리를 지켜보며 움직이지 않고 중얼거리는 풍경이라니. 그가 우리를 두려워한 건지, 우리가 그를 두려워하는 건지 구별하기 힘든 어색함이 흐르고, 이 괴상망측한 분위기가 잠시 동안 지속되자 점점 더 큰 공포감이 엄습했다. P와 나는 서로 말 한마디 없었지만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일치했다. 나는 재빨리 바이크를 일으켰고 P도 발목 부상을 잊은 듯 민첩하게 뒷좌석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곤 산사람을 피해 멀리 타원을 그리며 그 벌판을 우회해 달렸다.
그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올 때쯤,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비를 맞는 것 정도가 대수 이겠냐마는 비는 우리를 더욱 처량하게 했을 뿐 아니라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돌길 위의 바이크가 더욱 미끄러워졌다. 눈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은 눈앞을 계속 막아섰는데, 한손을 놓고 눈을 닦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P의 캡모자를 빌려 헬멧 안에 끼워 넣어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저 자외선을 막으려 들고 온 캡모자가 생존 아이템이 될 줄이야.
그리고 슬슬 해가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잿빛으로 가라앉더니 가시거리가 점점 짧아졌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이제 우리의 시야엔 그저 바이크의 헤드라이트가 가르치는 아주 좁은 한 평뿐이었다. 귓가엔 빗소리와 바이크 소리가 가득했지만, 우린 그것이 적막처럼 느껴졌다.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었고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언제 다시 균형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매순간 극도로 긴장해서 핸들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전방에서 빗방울이 날아와 몸에 부딪치곤 차갑게 깨어졌다. 외피의 모든 세포가 눈을 뜨고 있는 기분이었다. P는 운전에 집중하는 나를 부둥켜안고서 귓가에 외쳤다.
미안타. 갠히 내가 오자해가꼬. 진짜 우리 무사히 돌아 가기만 하믄 거기나 가자. 올랑고.
이런 오지 말고. 사람들 마이 살고. 안전한 곳. 거기도 윽수로 이쁜데. 첨부터 거기나 갈거를
전부터 말했던 올랑고 섬이었다.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수영을 하노라면 사람이 허공에 떠다니는 느낌이라 했다. 그래 내일은 섬으로 가자. 여유롭게 떠가는 배를 타고. 햇빛이 반사되서 눈이 부신 바다를 건너서. 사람발길 닿는 곳에도 평온한 안식이 있을 텐데.
슬슬 눈에 익숙한. 올 때 지나왔다고 확신이 드는 길이 등장했다.
그리고 드디어 포장된 도로와 다른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타났다.
문명이 닿아있는 곳의 소중함은 감동을 넘어서 녹아들 듯 한 포근함을 주었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극한까지 끌어올린 긴장감을 놓지 않고 폭우가 쏟아지는 산간의 아스팔트길을 무사히 운전해 돌아왔다. 오토바이 대여점이 무사히 모습을 드러내자 P는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풀려 주저앉은 나도 오만가지 감정이 파도치듯 몰려왔지만 서도, 20대 중반의 예비역이 우는 모습은 퍽 낯설었다.
결국 그 밤을 무사히 넘겨낸 우리는 기어코 올랑고 섬에 도달했다. 이국인들을 신기해하는 순수함이 가득한 곳이었고, 모든 주민들이 정이 넘쳤다. 모래밭에 지어진 하얀 외벽의 성당들과 해안가에 늘어선 야자수들. 어젯밤 빗속에서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노을이 질 무렵엔 아주 긴 시간동안 섬에 누워 해안가에 펼쳐져 있는 망그로브의 군락을 바라보았다.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코카콜라 캔을 하나 시원하게 따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위장까지 촉촉해 지는 느낌이었다. 물에서는 대 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 조각배 옆에 기대어 수영을 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마치 전날 밤의 대모험이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섬은 그 모든 두려움들을 뒤덮을 만큼 아름다웠다. 결국, 살아남아 햇볕을 쪼이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래서 스물다섯 살의 필리핀을 떠올리면 두 가지 촉각만이 떠오른다.
칠흑 같던 밤, 한껏 긴장한 피부에 닿아 깨지던 빗방울.
일요일 오후, 몸이 노곤 노곤해지던, 발바닥에 와 닿던 해안가의 모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