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키워드로 쓰는 아무 글#1 '런던베이글뮤지엄'
네? 과달루페가 어디냐 구요? 멕시코 몬테레이주에 있는 도시에요. 가봤냐 구요? 아니요. 전 뉴욕을 제외하곤 북미대륙에는 발을 디딘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언제나 꿈꾸는 여행지기도 하죠. 언젠가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주어진다면 남미로 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그 곳이 제게 특별한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어요. 아! 저는 가톨릭 신자거든요.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불리는 기적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어느 농부가 숲에서 성모를 만나 계시를 받고 주교를 설득해 성당을 짓는 이야기죠. 워낙 현대에 벌어진 일이라 파훼되지 않은 꽤 많은 증거물들이 남아있고요. 저도 제가 이 걸 얼마나 진지하게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나사와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이기도 하니까, 마냥 민담으로만 취급하긴 힘든 이야기라고 봐요. 아마 그곳에 가면 제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종교적 경외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성 프란치스코의 탄생지인 아시시를 갔을 때도 그런 충만감을 느꼈거든요. 아시시의 성당들이 줬던 따뜻함과 편안함을 과달루페도 줄 수 있겠죠.
제가 다녀본 도시들은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고, 대부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가게이름을 굳이 경험해 보지 못한 도시로 정한 건 말 그대로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인거 같아요. 갈망하고 희망할 수 있으니까요. 오롯이 기대감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도시잖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대사가 있는데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에서 나왔어요. 수험생 때 100일간 영화를 끊고 공부하다가 수능이 끝난 직후 처음 보려고 고른 영화에요. 저한테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죠. 에르네스토 게바라, 그러니까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가 남미 전역을 여행하는 내용인데, 여행 중 에르네스토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문장이에요.
"어머니, 어떻게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 그리울 수 있을까요"
맞아요. 다들 그 얘기도 물어보더라구요. 멕시코면 데킬라 아닌가? 그 정도 더운 기후 지방이면 하다못해 럼 같은 게 주력 이어야하지 않나. 그런데 왜 반대로 위스키와 안동소주 라인업이 이렇게 많냐는 거죠? 사실 맞는 말이에요. 위스키를 숙성시키기에 최적이라는 기후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처럼 쌀쌀한 지방이죠. 그런데 최근에 급격히 뜨고 있는 위스키 생산지가 어딘지 아세요? 대만이에요. 놀랍죠? 그렇게 더운 지방에서 무슨 위스키냐 싶겠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만 위스키가 뜨는 이유도 기후 때문이에요, 날씨가 더운 만큼 관리는 힘들지만, 추운지방보다 숙성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거든요. 타이베이에서 10년을 숙성하면, 다른 서늘한 곳에서 20년 숙성 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거든요. 대표적으로 KAVALAN은 정말 평가가 좋아요. 마침 저희 가게에도 있는데 한번 맛보시겠어요? 멕시코 도시이름을 딴 바에서 맛보는, 대만에서 만든, 스코틀랜드 술이라니... 벌써 전 세계 절반은 돌아본 거 같지 않나요?
그런데 난데없는 베이스캠프는 뭐냐구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단어에요.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잖아요. 아, home이랑은 달라요. home이 여행의 끝, 종착지라면 베이스캠프는 모험의 시작점 혹은 세이브포인트 같은 거 랄까요. 안정감과 설렘을 동시에 주는 곳이죠. 저는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이른 은퇴 이후에 이 가게를 차렸어요. 그 전까지 저에게 증류주는 정말 '취미'의 영역일 뿐이었죠. 평생을 공부한 위스키 마스터도,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비싼 바틀도 없지만, 그만큼 부담스런 격식도 없는 곳이에요. 베이스캠프는 여행가들의 시작을 돕죠. 딱 시작 까지 만요. 그 이후의 시간은 개인의 몫이니까. 다만 지칠 때는 언제든 다시 돌아와 재정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사업이든, 연애든, 인생에서 경험하는 어떤 모험이라도 베이스캠프는 필요해요. 저는 이 가게가 처음 증류주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손님들에게도 그런 공간이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