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계절은 모두 다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좋았다.
우리 가족은 마치 둥근 원처럼 모난 곳 없이 따뜻했고, 나는 그 안에서 첫째라는 것이 좋았다. 동생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먼저 가본 길을 동생들에게 설명해 주고, 때로는 작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던 24살의 봄날, 우리 가족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찾아왔다. 가족의 중심이었던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다가왔다. 가장 단단했던 기둥이 빠져나가자 집은 흔들렸고, 우리도 함께 무너질 것만 같았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처음 겪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당황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어머니를 보았다.
여성으로서는 약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세 남매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강했다.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어머니는 능숙하고 의연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단순한 빈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손을 맞잡을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지만, 아버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마음속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원히 계실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어떤 일이 닥쳐도 쉽게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처음 겪는 순간 앞에 서 있어도, 아버지가 내 안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이 역설적이지만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27살 가을 나는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의 몇 년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내가 자라온 사회는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20살에 대학을 가고, 졸업 후 취직을 하고, 안정을 찾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고, 차를 사고,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평범한 행복’이라면, 그렇지 않은 삶은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대학에 갔고, 누구는 한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어떤 이는 오랜 방황 끝에 뒤늦게 꿈을 찾았고, 또 다른 이는 평생 한 가지를 지키며 살아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모든 인간의 속도는 같지 않다는 것을.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는 다르다. 봄에만 예쁜 식물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꽃은 늦가을에 피어나고, 어떤 꽃은 겨울에도 꽃망울을 틔운다. 언뜻 늦어 보이지만, 자신의 때가 오면 기다렸다가 피어나는 것. 그리고 겨울이 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다시 봄이 찾아온다는 것.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정해진 길’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누구도 타인의 행복을 판단할 수 없으며, 삶의 속도를 규정할 수도 없다. 나는 나의 시간을 살고, 나만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시간들에서 내린 결론이자, 앞으로도 나를 지탱해 줄 삶의 중심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