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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27. 2019

더블린에서의 식도락


너무 고된 한 주였다. 수요일을 제외한 월화목금 4번의 강연 참석이 있었고, 그중 하루는 서울까지 갔다 왔다. 특히 서울까지 갔다 온 강연은 유독 후유증이 있어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말도 못 할 피로감이 켜켜이 쌓여  주말 내내 시체처럼 잠만 자다가 일요일 점심쯤이 돼서야 정신이 들었다. 눈뜨고 얼마 되지 않아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갔다 오신 엄마가 다시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어디 가시냐고 여쭤봤더니 동생 친구 어머니들과의 친목모임이 있으시다고 했다.  


 모임 장소 내가 좋아하는 게장집이었다. 엄마가 마차도 끌고 가신다 하여 내 카드를 드려 온 가족이 먹을 간장게장을 사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가 집에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도착하시자마자, 포장된 간장게장 중 한 마리를 정신없이 뜯어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게장 껍데기에 뜨끈한 밥을 넣어 착착  비비고, 그 위에 게장의 간장을 살살 뿌려 엄마가 끓여놓으신 김치찌개와 먹으니 밥 한 공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평소 밥을 많이 먹게 만드는 간장 게장, 엄마표 김치찌개를 정말 좋아하지만 유독 이번 여행 후 매운 음식이나 밥과 어울리는 음식에 집착하게 되었다. 누가 보면 열흘남짓의 해외여행이 아니라 외국생활을 오래 하다 온 사람처럼 말이다. 무엇을 먹고 왔길래 이런 건지 해서 더블린에서 즐긴 음식들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더블린에서 먹은 첫 식사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이었다. 기름진 식사에 강한 내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남긴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짭조름한 양념이 잘 어우러진 햄버거와 바삭바삭한 감자튀김 모두 맛있었지만, 남길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런치 타임에 가면 할인받을 수 있는걸 미리 알았으나 방문 시간이 늦은 오후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런치타임이 꽤 길어서 할인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 탓인지 학생으로 보이는 커플 손님들이 많았다. 비록 조금(?) 남기긴 했지만 사실상 쫄쫄 굶다가 더블린에서 먹 첫 끼니라 기억에 많이 남았다.




 여행에서 식도락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맛집을 고집하보면 여행 일정이 꼬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더블린 둘째 날, 찾아둔 맛집이 아닌 길 가다가  끌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7분 뒤면 정식의 메뉴를 먹을 수 있고, 지금 주문하면 브런치 메뉴만 가능하다고 했다. 조식이 포함되지 않은 호텔에 머문지라 7분도 기다릴 수 없는 배고픔이어서 바로 브런치 메뉴를 골라 주문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양이 좀 적긴 했지만 (과장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접시 하나를 비우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직원이 접시를 치워가는데,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이렇게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묻지도 않은 TMI 너스레를 떨었다.

맛은 있었지만 양이 너무 섭섭했다 하며 식당을 나오는데 식당 바로 옆 옆집이 유명한 타르트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저자가 이 집 당근 케이크에 열광했던 것이 기억났다.



 사실 나는 당근 케이크를 한 포크 이상 손을 댄 적이 없을 정도로 그 맛을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인데 저자를 믿고 당근케이크와 Irish tea를 시켰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당근 케이크 중 제일 맛있는 케이크였다. 차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더욱 일품이었다.



더블린 첫날 저녁, 더블린 마지막 날 점심. 

더블린에서 이렇게 두 번 먹은 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레오 버독의 피시 앤 칩스다.


먹을 생각에 흥분하여 형편 없게 찍어버린 사진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피시 앤 칩스 가게라는 명성답게 그야말로 감동적인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흰 대구살. 아낌없이 퍼준 느낌의 푸짐한 감자튀김. 단 맛이 느껴지는 어니언링. 같이 파는 소스에 이 모든 걸 듬뿍 찍어 입에 넣은 다음 기네스 맥주를 들이켤 때의 그 맛이란.

아마 다시 더블린을 간다면, 기네스 맥주와 어우러지는 레오 버독의 피시 앤 칩스 맛을 못 잊어서일 것이다. 




 더블린 버스킹의 성지 그래프턴 스트리트를 지나, 세인트 스티븐 그린 공원을 산책하던 날은 유독 날이 흐리고 쌀쌀한 날이었다. 공원 근처에 아일랜드 로컬 브랜드 샌드위치 가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양을 생각하고 1인 1 샌드위치에 몸을 녹일 수프까지 시켰는데 역시 또 양이 많았다.
이 집 샌드위치의 킬링 포인트는 아주 잘 구워진 빵에 있었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닌 로컬 샌드위치를 고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에서 먹은 음식들을 되돌아보다가 계속해서 군침을 삼켰다. 간장 게장과 김치찌개로 충분히 리프레쉬한 후라 그런가.  저 음전부를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내일 동태전과 감자튀김을 사 와 피시 앤 칩스 분위기부터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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