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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05. 2019

외로워서 읽는다



가을이란, 외롭다고 한들 한 점 이상할 것이 없는 계절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가을, 이상할 정도로 외롭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어도 이 외로움이란 감정은 (아마도) 영영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걷는 동선이 같거나 비슷했던 친구들은  점점 각자의 길로 나뉘었다. 그 숱한 나뉨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말을 나눌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걸 털어놓는 친구들이 몇 명 있지만... 각자 처한 시간과 공간이 다르다 보니 본론의 앞뒤로 꼭 부연 설명을 붙여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른다.

 또한 나이가 들면 각자 '나만의'경험이 쌓여가는데 그 경험에서 오는 고민 역시 시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내 안의 고민들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게 되거나, 나눈다한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게 된다.

 내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을 했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외로워진 주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늘 뒷북을 치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혹시 이런 외로움을 먼저 느꼈거나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했나 싶어 맥락 없이 결혼한 친구들에게 질문을 날린 적이 있다.

넌 안 외롭지? 그러면 다들 내 질문의 포인트를 꿰뚫은 양 야, 결혼해도 외로워라는 (조금은) 허무한 답을 해주었다.
쳇, 그러니 결혼 못한 나는 얼마나 외롭겠냐 하려다가 (친구들 몽땅 거짓말 할리가 없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혼한 친구들은 외로워도 외로울 새가 없고 나는 외로움 그것을 물씬 느낄 새가 있다는 것. 그 차이였다.



 얼마 전 주말에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 워크숍이 있었다. 참석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평일 출근의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워크숍 장소가 내 고향 인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역에 있다는 것과 점심으로 뷔페를 먹는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바라보고 참석했다.

형식적이지만 필요하다는 교육 두 가지를 받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여기서 나는 정말 혼자구나라는 외로움을 또 느꼈다. 분명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행사인데 오랜만에 보는 직원들이 다 낯설게 느껴지고 초대받지 못한 남의 집 잔치에 온 불청객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못해 나누는 미소와 대화는 다 피상적으로만 느껴졌고 내가 하는 말이든 남이 하는 말이든 전혀 귀에 닿지가 않았다. 회사 내에서 비교적 가장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최대리가 행사 내내 옆에 앉아 있었고, 그 어떤 특별한 사건이 없었는데도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은 회사 행사가 끝날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꾸역꾸역 워크숍을 마치고 챙겨 온 카메라와 책을 들고 그 지역의 카페로 갔다. 워크숍 장소에서 불과 길하나 건넜을 뿐인데 마음이 확 편해졌다. 같이 사내 동아리를 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후배 대리도 함께였다. 차 주문할 때와 카페를 잠시 구경할 때를 빼고 나와 후배는 별다른 대화 없이 각자 가져온 책을 두 시간 정도 읽었다.  

 내 고민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작가의 문장에 매달리고 보니 불안한 마음이 가시고 덜 외로워졌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에는 특히 내 마음에 빨간약을 바르는 심정으로 책을 읽는다. 이보다 더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없겠다는 문장을 만난 날에는 그 약효가 꽤 오래가기도 한다.

가을이라 왠지 더 외로웠는데, 이렇다 할 설명 없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책이 있으니, 그야말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맞나 보다.

이번 주에 벌써 입동이란 절기가 대기 중이고, 연말이 코 앞이니 더 외로워 질일 만 남았다.


책장을 넘긴다. 문장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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