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현재 속한 지점까지는 지하철역으로 7개이다. 비교적 복에 겨운 출퇴근 거리지만 오고 가며 뭔가 시도 하기에는 애매한 거리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신입사원일 때도 이 지점으로 출근했으니 그때도 전철을 탔을 텐데 무엇을 하면서 오고 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은 출근길에 시집을 챙겼다.
지금도 시를 좋아하고 한 때 정말 사랑했던 적도 있었는데 시집을 마지막으로 쥐었던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한 편 한 편 읽어 나갔는데 지하철 한 역에서 다음 한 역까지의 이동 거리가 시 한 편 읽기에 정말 좋은 거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벽히 감상했다고 장담할 순 없어도 척박한 출근길 정서에 파문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 왔다 갔다 한 시간들을 쌓아놓고 보면 꽤 긴 시간이었을 텐데... 진작 시집을 읽을 걸... 그간 무표정으로 흘려보낸 출퇴근 시간들이 아까웠다.
사실, 어느 출근길에 내가 곧 한 번은 시집을 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다. 도착역 지하철에서 출구까지 걸어 나갈 때 항상 시 옆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시를 스쳐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고, 바삐 움직이는 아침의 행인과는 동떨어진 속도로 아예 멈춰 서서 시를 읽은 적도 있다.
어쩌면 사무실에 발을 딛는 순간, 책상 위 쌓여있는 서류들을 넘기는 순간 한 편의 시가 준 파문은 온데간데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준 시인의 '마음 한철'을 읽는 출근길은 평소와 다른 출근길이 되었다.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은 미인과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은 나.
'어떤 마음'은 한 철로 끝나지 않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을 이리도 잘 알아주는 시인이 있다는 것에 고질인 외로움이 조금은 가시었다. 이렇게 가끔 출근길에 시를 초대하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