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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28. 2020

치앙마이 1일 차, 마사지로 시동 걸기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머물기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이 된 생일 다음날, 치앙마이로 왔다. 여전히 임시방편적인 선택밖에 못하는 나는 무언가를 이렇게 계속 유예 중이다.




 부랴부랴 뒤늦게 여행 준비를 하다가 치앙마이에 주말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치앙마이에 토요일 오후에 도착하는 일정이니 첫 시작은 Saturday market에서 열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치앙마이에서의 토요일은 단 하루뿐이다.

 사람 심리라는 것이 이렇게 웃기다. 별 생각이 없다가도 오늘 아니면 못 가고 못 본다 생각하니 갑자기 그것만이 이 세상 우선순위로 돌변한다. 우선순위라는 것을 잊은 지 꽤 오래,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처럼 되는대로 살았는데 입국과 출국 시간이 정해진 여행지에서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새삼 우선순위가 생기고 나답지 않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고 애쓴다. 느릿느릿 치앙마이를 상상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일상의 공간에서 볼 수 없었던 치밀함과 계획성이 빛을 발한다. 출국 시간처럼 내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 역시 정해져 있었다면 아마 내 삶의 모습은 지금과는 퍽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호텔에 도착했으나 이른 체크인이 불가능하다 하여 짐만 맡기고 호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태국 친구들이 있는 덕분에 그 어느 나라의 음식보다 태국 음식은 익숙한 편이다. 이미 아는 맛인 음식들 중에서도 나의 훼이보릿들만 시켜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고 나니 새삼 겨울왕국 한국에서 입고 온 기모바지와 두 겹으로 겹쳐 입은 폴라티의 옷차림이 의식된다. 치앙마이는 태국의 북쪽 지역이라 그리 덥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고 실제 식당을 오고 가는 길이 불편하진 않았지만 너도 나도 간편한 옷차림들 사이에서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계절감 맞지 않은 의상만 제외하면 치앙마이에서 첫 식사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침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세수만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상태라 체크인을 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계절감 맞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Saturday market에 가기 전에 시간이 있어 사촌 동생이 찾아 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검색이 몹시 귀찮아진 나는 전체적인 여행 일정만 계획하고, 이번 여행의 아기자기한 사항들은 모두 동생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제야 갓 서른이 된 동생 세대와 놀 일이 별로 없는 나는 그들이 어떤 것에 반응하고 열광하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나에게도 인스타 갬성이 훅 밀려들어왔다. 사진을 찍어서 여기 왔다 갔다는 것을 남기고 싶은 그런 비주얼이었던 것이다. 직원이 갖다 준 메뉴를 보아하니 브런치가 맛있는 카페 같았는데 이미 태국 현지식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그냥 가기 섭섭하잖아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급의 디저트를 두 개나 시켰다. 불과 그제까지 사무실에서 느꼈던 온갖 답답하고 쓴맛들이 이 카페의 단맛에 묻히었다. 주변 테이블 모두 한국인이어서 잠시 이국땅인걸 잊긴 했지만, 타이 밀크티와 팬케이크의 달콤함은 아 그래 이 맛에 여행 오는 것도 있지 있어 하기 충분했다.




 좀 늘어질 수 있는 일정이었다면 앉아서 음악도 듣고 멍도 때리고 책도 읽으면 참 좋았을 그런 곳이었다. 비록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월화수목금 쓴맛만 느끼는 10년 차 직장인인 나나 수학교사가 되고 싶어 오랜 시간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관둔 사촌동생에게는 한 번쯤 필요했던 당분 충전소였다.

 Saturday market은 저녁 6시부터 사람이 몰려들어 걷기 힘들다는 소리를 듣고 좀 이르게 시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걸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로 시장이 붐비었다. 한국에서도 시장가는 걸 좋아하지만, 외국에서의 시장 구경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정이다. 그만큼 재밌고 신이 난다. 시장에 가면 기분이 좋은 건 역시 시장 특유의 생동감 때문인 것 같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데 먹고사는데 필요한 걸 팔고 사는 모습이 같다는 건 볼 때마다 신기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음식과 물건,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속에 있으니 시장 그 자체가 사람 사는 냄새고 모양새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것 같은 팔찌 두 개를 Saturday market에서 사서 사촌 동생과 나눠 찼다. 그리고 태국 여행 기념으로 우리 스스로를 위한 코끼리 인형도 하나씩 샀다. 계산할 때만 해도 시크 철철 쿨내 나시는 아저씨였는데, 코끼리 인형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갑자기 포즈를 취해 주셨다.




 어느 정도 물건 구경이 끝나고 조카들을 위한 앙증맞은 리본핀까지 구입하자 허기가 훅 밀려왔다. 먹거리들이 워낙 많아서 뭘 먹을지 망설이다가,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 뒤로 자리를 잡았다. 시장에 도착할 때부터 봐 둔 해산물 구이 집에서 구운 오징어를 사고 볶음밥을 사러 그 옆집으로 갔다. 음식 주문 줄이 애매해서 긴가민가하고 서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셔서 중국말로 말을 거셨다. 중국인이 아니란 걸 알려 드리기 위해 영어로 말하자 이번엔 아주머니가 여기가 줄이 맞냐고 영어로 물어오셨다. 그 아주머니와 음식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만에서 오신 그분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함박 미소를 지으시며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셨다. 요즘 현빈 손예진이 나오는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계신다고 하셨다. 대만도 실시간 방영하나 싶어서 깜짝 놀라 재차 여쭤봤는데 그렇다고 하셨다. 나의 영어가 불완전하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아시아에서의 한류는 엄청나긴 한 것 같다. (누굴 만나든 내가 한국사람이라 하면 드라마 얘기부 터한다) 내가 나도 대만을 여러 번 갔었고, 대만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럼 연예인 중에 누굴 좋아하냐고 물어 오셨다. 주걸륜의 영어식ㆍ중국식 발음은 몰랐지만 다행히 그의 대표작인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중국말로 할 줄 알아서 나의 팬심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그 대만 아주머니를 만난 날이 주걸륜 생일이었다) 아주머니는 옆에 아들로 보이는 남자를 소개하며 그분이 곧 한국으로 1년간 교환학생을 갈 거라는 얘기까지 해주었다. 내가 주문한 밥이 나온 바람에 더 길게 얘기를 못했지만 시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한 건 처음이었다.





코코넛 주스까지 한통 시켜서 시장에서 알찬 저녁식사를 마쳤다. 대만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던 그 계란 볶음밥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볶음밥 중 top 3 일정도로 맛이 좋았다. 역시 내 입맛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시장에서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소화도 시킬 겸, 시장에서부터 호텔까지 걸어왔다. 밤인 데다가 초행길이라 살짝 헤매긴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호텔에 마침 스파가 있어 자기 직전 타임으로 마사지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예전에 태국 친구가 한국사람들과 행사를 할 때는 공식 일정 후에 반드시 마사지를 번외로 넣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마사지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국은 마사지가 비싸기 때문에 동남아 여행 시에 합리적인 가격에  퀄리티까지 좋은 마사지는 내게도 필수다.

돌아가면 다시 또 시작, 잠시 뿐인 거라 해도 일단 드러누워 마사지를 받으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치앙마이의 첫째 날이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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