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의 온전한 하루가 시작된 (치앙마이 2일 차) 일요일, 1일 차에 이어 마켓 구경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토요 시장을 갔을 때와 같은 이유로)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Rustic Market과 Sunday Market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일요일 오전에 열린다는 Rustic Market은 아담하면서도 볼 것이 많은 마켓이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아져도 한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Rustic market은 수공예품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하여 가기 전부터 기대가 큰 곳 중 하나였다. 역시나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 대해 감탄하며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내게는 단 한 톨도 허락되지 않은 재능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천천히 구경하고 있는데 실로 만든 쥐 모양의 열쇠고리가 눈에 띄었다. 올해는 경자년 쥐의 해고, 우리 집에도 쥐띠가 두 명(엄마와 동생)이라 둘을 위한 열쇠고리를 샀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나무 밑의 야외 장터를 구경하려는 찰나 마음을 홀딱 뺏긴 장식품을 발견했다. 아직 내 집은 없지만 그럴 때가 온 것인지 내 집이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꾸미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은행 대출이 아니고서야 내 집 마련은 영원히 행방이 묘연하지만 여하튼 그 어느 때보다 내 집, 내 공간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장식품 역시 집 모양이라 더 마음이 간 건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기서 큰 집 한 채, 작은 집 세 채를 샀다. 집이 무려 네 채이지만 가방 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집들이다.
작년 여름에 태어난 둘째 조카를 위한 코끼리 모빌을 구입하고 나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달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했더니 마켓 한편에 작은 버스킹 무대가 있다. 내 마음을 알고 부른 것인지 여자분이 계속해서 노래로 속삭여주신다.
Don't worry, Be happy.그래.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마켓을 떠날 즈음 사촌 동생이 이 마켓에서는 삿갓을 쓴 아저씨가 내려준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하여 찾아보았다. 진짜 삿갓 쓴 아저씨가 커피를 내리고 계셨고 여지없이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렸다. 줄이 너무 길어 보여 나와 사촌동생은 병에 담긴 콜드 브루 커피를 사기로 했다. 예쁜 병에 담긴 삿갓 아저씨의 커피를 매일 아침 야무지게 잘 나눠 마셨고 맛이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마켓을 떠나기 전 삿갓 아저씨의 커피 대신 Thai style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달달한 것이 (한국인들에게는)참으로 익숙한 믹스커피맛이 났다. Rustic Market은 말 그대로 rustic 했지만 뭔가 고유의 멋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치앙마이에 또 간다면 그 멋스러움과 소박한 평화로움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알찬 일요일 오전을 보내고 점심 메뉴로 정한 것은 블루 누들의 국수였다. 이 또한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맛집이라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다행히 점심시간보다 살짝 이르게 도착하여 금방 자리에 앉았다. 고기 국물이 베이스인 국수라 그다지 당기진 않았지만 명성답게 맛이 괜찮았다. 무엇보다 황급히 고수 빼 달라는 말을 현지어로 찾는 우리에게 직원이 씩 웃으며 No 고수?라고 선수 쳐주셔서 아주 편안하게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금 쉬었다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사촌동생이나 나나 마사지로 대동 단결된 부분이 있어서, 블로그에 평이 좋았던 스파로 예약을 해뒀었다. 마사지와 관련된 기본사항을 체크하고 과일과 주스를 마신 다음
발 씻기부터 들어갔다. 스파 외관을 구경하며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다 우리가 신을 슬리퍼에 적힌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한글이 맞았는데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깨끗해진 발에 정체불명 한글이 적힌 슬리퍼를 신기고 직원이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나나 사촌동생이나 살면서 마사지로 이런 호사를 누린 건 처음이었다. 둘 다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장장 3시간에 걸친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내가 돈을 벌 때는 몰랐던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시간과 노동력이 오직 나를 위해서만 제공된다. 욕하면서도 회사를 쉽게 못 그만두는 것이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하니 나 스스로에게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이 생긴다. 임용고시를 관두고 알바를 하고 있는 사촌 동생도 마사지받는 내내 본인의 시급을 계산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사지 비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돈이 좋구나 하면서도 나 또한 노동자라는 사실에 아픈 부위에 받은 마사지 후유증처럼 맘 한구석이 뻐근했다.
돈 낼 때는 세상 쿨하게 계산했는데 예산 중 상당 부분을 마사지로 탕진해 놀란 우리는 이제부터 아껴 쓰면 된다면서도쇼핑을 하러 Sunday Market으로 향했다. Sunday Market은 Saturday Market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단돈 199밧(한국돈으로 약 8천 원)에 꽤 귀여운 스트라이프 천가방을 건져서 기분 좋아진 것도 잠시 점점 많아진 사람들 때문에 거의 떠밀리듯 앞으로 앞으로 가야만 했다.
시장 구경이 아닌 사람 구경이 되자 말도 못 할 피로감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시장의 반도 채 못 보고 지친 우리는 일초라도 빨리 시장을 빠져나가는 게 최우선 미션이 되었다. 다행히 시장의 끝이 우리 숙소와 가까운 타패 문이어서 탈출하자마자 호텔로 금방 갈 수 있었다.
타패 문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눈여겨보던 음식점이 있어서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점 인테리어도, 음식점 이름도, 음식 맛도, 분위기도 (잘생기고 젊은 뮤지션이 트렌디한 pop을 기타 치며불러주고 있었다...) 모두 다 좋았다.
치앙마이 밤바람은 특히나 선선한데, 그 흩날리는 바람 안에서 Singha를 들이켜니 그 맛 또한 끝장이었다. 한국에서 상상했던치앙마이의 두 번째 밤이 이렇게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