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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01. 2020

치앙마이 3일 차, 다르면서도 같은 월요일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머물기



토요일, 일요일에는 그때만 열린다는 마켓 구경으로 자유여행임에도 제약이 따른 여행이었다. 치앙마이 3일 차 월요일에는 치앙마이 내 사원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사원 탐험을 떠나기 전 호텔 주변과 골목들을 산책했다. 치앙마이에서의  첫째 날, 둘째 날 시장 구경도 물론 재밌었지만 이때부터 치앙마이에 왔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던 것 같다. 나의 평소 월요일 오전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풍경이었다. 기분 좋은 햇살, 선선한 바람 안에서 느릿느릿 골목길을 걷는 그 기분이란.




 잘 안 하던 SNS를 열어 오랜만에 사진을 업로드하고 치앙마이 골목길 탐험이라고 글을 남겼다. 대학 선배가 '잘 살고 있네'라고 댓글을 남겨서 기분이 이상했다. 잘 살고 있다는 말도 요즘의 나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SNS에서 보이는 것은 역시 (내 것이나 남의 것이나)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한계가 느껴졌다.  아이처럼 골목을 누비다가 계속 눈에 밟히는 카페가 있어 들어가서 일명 아아아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서는 한창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이미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참 맛있게 보였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 탓이었을까, 커피맛도 참 좋았다. 이 카페는 게스트하우스도 겸하고 있었는데 혼자 가게 되면 한 번쯤 묶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행복한 골목길 마실을 마치고 Wat suan dok으로 떠났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절에 가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다. 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차례 방콕을 갔을 때도 사원을 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태국의 사원은 화려하고 예쁘다. 여행자로서든 개인의 취향으로서든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화원이라는 뜻을 가진 쑤언 독은 법당 내의 대형 불상과 흰색의 건물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치앙마이의 햇살과 흰색 건물이 자아내는 배경이 환상적이라 이곳에서 한창 사진을 찍어댔는데 알고 보니 왕실의 무덤이어서 겸연쩍어졌다.

 왓 쑤언 독에서 이번에는 Wat phra sing으로 향했다. 1,000여 개의 사원이 있다는 치앙마이에서 단 한 곳의 사원을 봐야 한다면 꼭 방문해야 하는 사원이란 소개글을 보고 기대가 큰 사원 중  하나였다.




북부지방 최고의 격식을 자랑하는 사원답게 기품이 느껴지는 사원이었다. 왓 프라씽 사원 뒤편에 여러 개의 종이 있었는데 다 치면 복이 오지 않을까 싶어 하나하나 경건하게 종도 쳐보았다. 내 안의 온갖 번뇌가 잠시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치앙마이가 생길 때부터 있던,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Wat chiang man을 찾았다. 아름다운 불당과 그 뒤의 쩨디를 받쳐주고 있는 코끼리 조각상이 인상적인 곳이다. 코끼리 조각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코끼리 조각상을 한 바퀴 쭉 돌면서 어쩜 이리 실감 나고 정교하게 조각했을까 감탄했다. 인간의 믿음, 그것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예술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준다. 사원 전체적으로 아름다워서 여기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왓 치앙만에서 Wat chedi luang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중간에 잠시 카페에 들려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왓 쩨디 루앙을 찾아가는데 왓 쩨디 루앙 근처에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은근히 있어서 유혹이 심했다.  

 왓 쩨디 루앙은 60m 높이의 쩨디로 유명한 곳이다. 치앙마이 역사 속 가장 높은 건축물로 1401년에  98m 높이로 세워졌는데, 1545년 지진에 의해 손상을 입어 현재 그 파괴된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원래 형태로 봤음 더 좋았겠지만, 자연재해에 의해 무너진 그대로 서있는 그 모습도 꽤 멋있었다. 다 무너지지 않고, 일부 무너진 채로 오랜 시간 버텨온 모습이라 더 인상적이고 와 닿았던 것도 같다.

 상처 하나 없이 곱게 유지되는 인생이 몇이나 될까.

살짝 깨지고 부서져도, 무너지면 무너진 채로 그렇게 버티는 것도 멋이라는 것을 왓 쩨디 루앙의 쩨디가 가르쳐주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의 4개의 사원 탐험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사원 투어의 마지막 종지부는 Wat phrathat doi suthep에서 찍기로 했기 때문이다. 도이쑤텝 사원은 거리가 있어 데이투어로 예약을 해뒀다.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사원 중 하나인 왓 도이쑤텝의 거대한 황금빛 불탑은 밤에 보는 것이 더 멋질 것 같아  일부러 밤에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현지 여행사 픽업차량이 정확한 시간에 호텔 앞에 도착했다.  봉고차에 여러 명을 태우고 가는 데이투어였는데 모두 다 조용한 가운데 한 명 때문에 시끄러운 여행이었다. 우리 옆에 앉은 미국인 남자가 우리 뒤에 앉은 아이리쉬 커플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나와 사촌동생은 하필  발음이 정확한 그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들려 의도치 않게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사촌 동생이 언니 서양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해서 이럴 때 더 조용하지 않냐고 물어봐서 나 역시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대답했다. 처음 본 미국인의 TMI를 강제로 리스닝하다 보니 어느덧 도이쑤텝 사원에 도착했다. 야밤에 수십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해서 숨이 차긴 했지만 올라갈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도이가 산이라는 뜻이 맞다는 것을 실감했다. 치앙마이 북동쪽 해발 1,072m에 자리한 도이수텝 사원에서 본 치앙마이의 야경은 다소 소박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 화려한 도시 야경에 익숙해졌었나 보다. 비교적 심심한 야경을 보면서 얼마 전부터 치앙마이 한 달 살기란 말이 많이 들리고 치앙마이라는 여행지가 인기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고작 3일 차에 내가 느낀 치앙마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데 구석구석 볼 것이 많다는 매력과 있을 게 다 있는 생활상 편의성이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1월에 가서인지) 선선한 여름과 화창한 날씨가 자꾸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치앙마이 야경 감상을 끝내고 불당에 들어서자 그 경건함에 저절로 숙연해졌다. 신발을 벗고 황금빛 불탑 주변을 걷자 순간 인간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신비감이 들었다. 가이드가 준 자유시간까지 한참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도이수텝 사원 전에 잠시 들린 Wat U-mong까지 합치면  하루 동안 6개의 사원을 탐험한 셈이다. (왓우몽은 명상하기에 좋은 분위기의 사원으로 실제 템플 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고 하여 솔깃했다.)

 치앙마이에서의 3일 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6개의 사원 투어로 결국 월요일스럽게 알차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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