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여행이 다가왔을 때쯤 TV를 보다가 우연히 치앙마이 패키지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을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시청을 했는데, 그때 화이트 템플과 골든 트라이앵글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이 임박해서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내가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두 곳은 치앙마이에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가야 하는 치앙라이에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멀어서 당황했지만, 저 두 곳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급하게 데이투어를 찾아서 예약했다. 아무래도 한정된 일정 안에서 치앙마이에서 꽤 떨어진 곳을 여기저기 다니려면 교통편은 확보되야할 것 같아서 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해서 치앙마이의 넷째 날, 치앙라이로 떠났다. 아침 7시부터 호텔 로비에서 픽업차량을 기다리느라 새벽부터 서둘렀더니 차에 타자마자 연신 고개를 흔들며 졸아댔다. 중간에 휴게소에 한번 들렀을 때 하루 동안 우리를 안내해주실 가이드 분이 말을 거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동이 드라마를 즐겨 봤다며 한효주의 팬이라고 하셨다. 데이투어는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추억이 만들어지는지 결정되는데 맥스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가이드는 무척 친절하고 나이스 한 분이셨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한창 졸다 보니 치앙라이 데이투어의 첫 목적지인 Wat Rong Khun에 도착했다. 사원 전체가 흰색이라 화이트 템플이라고 불리는 왓 롱쿤은 햇살을 받으니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왓 롱쿤은 치앙라이 출신 예술가 찰름차이 코싯피팟이 설계한 사원으로 흰색으로 부처님의 순수를 표현하고 있다. 치앙라이의 랜드마크 중 하나답게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부처님의 윤회사상을 뜻한다는 둥근 다리를 줄 서서 건너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가이드 말이 이 정도면 보통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 이 사원은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라 언제나 사람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지옥을 상징하는 듯한 곳 위로 사람들의 손이 뻗어 나와있는데, 그 형상을 보고 있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뭔가 참 쉽지 않구나란 생각이 들어 계속 그 손들에 눈이 갔다. 사원 구경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황금으로 치장된 럭셔리 화장실을 사용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Long neck karen 마을로 향했다. 언젠가 다큐에서 봤던 여성들이 목에 링을 하고 있는 있는 민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민족은 5세 여자아이 때부터 35세까지 링을 찬다고 한다. 링이 많고 목이 길수록 미인이라고 여겨진다는데 내가 마을에서 본 분들은 거의 다 미인이었다. 관광객도 저 링을 체험해볼 수 있어서 나도 잠시 목에 매 봤는데 무게가 상당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름다움은 멋진 것이지만 (민족과 문화를 막론하고)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기 위한 무게는 어디나 무거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서 가이드가 우리 팀의 여성 관광객들에게 대나무를 엮어서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Bamboo diamond 라며 만들어준 반지가 맘에 들어 그다음 날까지 끼고 다녔는데 그걸 본 현지인들마다 어디서 났냐고 물어봐서 으쓱했다.
이 마을에서는 마을 여성분들이 수공예품과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유독 정이 가는 모녀가 있었다. 엄마가 상당히 앳되어 엄마와 딸이라고 말하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아이가 나와 사촌동생을 보자마자 니하오라고 했는데 반응을 하지 않자 바로 안녕하세요를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다 사랑스럽고 귀여웠는데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엘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어서 겨울 왕국의 인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치앙라이의 작은 마을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구경을 마치고가이드에게 왜 이 마을은 여자만 있냐고 묻자 남자들은 거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먹고사는 모습의 초기 형태도 이러했을까 생각해본다. 참 좋아진 시절의 과실로 비교적 먼 나라의 작은 마을까지 와보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내가 평소 사는 모습은 너무 복잡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데이투어가 아니었다면 못 누렸을 일정에 만족감을 느끼며 이번에는 매싸이로 향했다. 태국 최북단의 도시인 매싸이는 작은 강을 연결하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미얀마와 맞닿아있다.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다리 건너를 보니 정말 미얀마 국경이 보인다. 분단국가에 살아 사실상 섬나라라 할 수 있는 South Korea 출신이라 그런가 육로를 통해 국경을 이렇게 캐주얼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생경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인상적이고 마음에 드는 방문지였다.
태국 최북단 매싸이에서 데이투어 참여자들의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대망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향했다. 치앙마이 전체 여행 일정 중 내가 가장 많이 기대하고 손꼽았던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 미얀마, 라오스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그냥 이 사실 하나만으로 여기에 가고 싶었다. 보트를 타고 저쪽 땅은 미얀마고, 저쪽 땅은 라오스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내가 왜 그리 골든 트라이앵글에 꽂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나 스스로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일정 부분의 자의와 상당 부분의 타의에 의해서 어떤 경계에 놓여 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실제 경계선인 국경에 그렇게도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희한하게 골든 트라이앵글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작년 말, 지리학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며 국경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어떨 때 국경을 인식하나 스스로에게 물었었는데 나의 답이 duty free인 바람에 나 자신에게 몹시 실망을 느꼈었었다. 보트가 잠시 라오스 땅에 정박했는데 그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이 duty free인 것을 보고 내 답이 개인적인 못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보트가 잠시 서고 모든 승객들이 내려서 라오스 땅을 밟았다. 태국의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에 여행 왔을 뿐인데 어느덧 라오스의 국경에서 라오스 땅을 밟게 된 것이다. 태국 돈 30밧을 내면 그 국경에서 잠시 머물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우리나라 여권 파워가 2,3위를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갈 수 없는 곳이 있는데, 단 돈 30밧에 이리 쉽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을 넘나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친절한 가이드 맥스가 자기는 여기에 오면 항상 라오스 맥주를 마신다며 그 맛이 정말 좋다고 했다. 맥스에게 추천받은 라오스 맥주를 3병 사서 가이드와 같이 나눠마셨다. 맥스가 물어봐서 한국말로 건배를 가르쳐주고 짠을 한 다음 들이켰는데 왜 그가 라오스 맥주를 좋아하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빨대를 꽂고 맥주를 마시면서 라오스 땅에서 태국 땅을 바라봤던 장면은 내 경험들 중에서 오래도록기억하고 싶은 한 장면이 되었다.
골든 트라이앵글 관광까지 마치고 다시 치앙마이로 향했다.
치앙마이 4일 차, 차 안에서 어둑어둑해지는 치앙라이를 바라보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다시 이 풍경을 보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