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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05. 2020

치앙마이 5일 차, 나의 케렌시아를 찾았다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머물기


이번 여행에서 치앙라이에 이어 두 번째로 기대가 컸던 장소는 싼캄팽 민예 마을이었다.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그랩을 잡으려는데 평소와 달리 도착지 입력란의 자동 완성 기능이 잘 작동하질 않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가질 않는 장소인 걸까.


자꾸만 현지어로 검색되는 도착지명을 호텔 도어맨에게 싼캄팽, 싼캄팽 하면서 확인까지 받았건만 찝찝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차를 타고나서부터 진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싼깜팽은 시내가 아닌 외곽임에도 불구하고 그랩 기사가 자꾸 큰길이 아닌 골목길로 가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차는 막다른 골목을 맞닥뜨렸고, 후진해서 빠져나온 다음에야 큰길로 접어들었다. 해외여행 시 그랩을 타본 것이 수십 번인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한창 달리다 보니 도로 표지판에 싼깜팽이라고 적혀있어 맞겠거니 하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면 갈수록 이상한 시골길로 접어들더니, 인적이 없고 을씨년스러운 황무지 같은 곳에 차가 섰다. 기사도 당황했는지 대체 너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어왔다. 민예 마을이라 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아 싼깜팽 마켓이라고 했더니 기사가 빠른 속도로 5분간 내달려  우리를 Umbrella making center앞에 (여기가 마켓이라며) 내려주었다.




여행책을 통해 우리가 내린 곳은 버쌍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내려준 곳도 들르려고 했던 곳 중 하나라 놀라진 않았다. 다만 내가 상상한 싼캄팽 민예 마을의 모습이 아니었을 뿐이다. 대체 싼캄팽 민예 마을은 어디란 말인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졌지만, 우리가 준비한 정보로 계속 싼깜팽을 찾는 것은 무리여서 기사가 내려준 곳부터 치앙마이 5일 차 여행을 시작했다. 화려하고 예쁜 우산들과 태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들을 조금 구경하다가 그림이 그려진 부채 하나 사들고 센터를 나왔다.




 센터 밖에도 거리 양쪽으로 여러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작정하고 그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네 시골 읍내 같은 친근한 풍경이 쭉 이어졌다. 한쪽 라인을 어느 정도 구경하고 가게들이 드문드문해질 때쯤 길을 건너 반대편 라인으로 갔다. 소박하지만 주인의 취향이 곧 내 취향 같은 옷가게를 발견하고 거기서 쇼핑을 했다. 마침 가게 사장님이 영어를 할 줄 알아 소통이 잘 되었다. 셔츠, 원피스, 머리끈 5개를 사서 코끼리가 그려진 봉지에 가득 담고 뿌듯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언제나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싶고 그 마음은 변함없지만, 단돈 몇만 원어치라도 이렇게 사고 나면 입꼬리가 올라가고야 만다. 룰루랄라 나오는데 그 옷가게 바로 옆 카페의 아우라가 심상치 않았다. 마침 목도 축일 타이밍이라 주저 없이 들어갔다.




공간 구석구석이 전부 다 내 취향이라 카페 입구에서부터 차를 주문하러 가기까지의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그때 마침 카페 주인이 모습을 보였다. 카페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분위기의 여성 분이었다. 쇼커트 머리에 티셔츠와 바지 하나 걸쳤을 뿐인데 멋이란 것이 베어 나오는 그런 분이었다.



 아이스 타이 티를 주문한 다음 카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허락을 얻자마자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원래 나는 감정을 잘 못 숨기는 편인데, 특히 좋아하는 것을 보면 (숨기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티를 팍팍 내고야 만다. 우아하게 사진만 찍었어도 될 것을 계속 호들갑을 떨고 말았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결국 카페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카페가 정말 예쁜데 인테리어를 직접 한 거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들렸다. 소품 하나하나그것들의 배치, 전체 공간에서 풍기는 분위기, 흘러나오는 음악 등등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의 감탄이 싫지 않았는지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손님도 우리 테이블뿐이었다. 그녀는 영어도 잘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분 진짜 뭐지? 할 정도로 통하는 게 많았다.



방콕에서 10년간 선생님으로 일했다는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고향인 버쌍으로 돌아와 카페를 차렸다고 했다. 아담하고 예쁜 공간인 그 카페는 그녀의 일터이자 집이었다. (알고 보니 카페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내가 쇼핑한 옷가게에서 월세를 받는 건물주기도 했다.)


 그녀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행 가이드로도 일하고 있었다. 자기는 많이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hidden place를 소개하는 걸 선호한다고 해서 또 한 번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은 직장인 연차로 가는 여행이라 유명한 장소만 찍고 돌아오는 식의 감질나는 여행을 하고 있지만, local만이 아는 숨겨진 장소를 탐험하는 여행은 내가 늘 꿈꿔온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10년 차에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말도 나로서는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그 새로운 일이 카페 사장님과 여행 가이드라니.

 일과 직장에 그 어떤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10년 동안  고민 치하니 신께서 옛다 네 고민의 결과물, 좋은 예시의 실사판을 보여주마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웬 개 한 마리가 카페를 휘젓고 다닌다. 그녀가 키우는 개냐고 물었더니 주인 없는 떠돌이 개인데 아파 보여서 병원도 데려가고 밥도 줬더니 그때부터 여기서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멋지게 사는 사람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았는데 심지어 따숩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번에는 자기가 키웠던 강아지라며 내게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마다 잘 생긴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웃고 있었다. 그녀 많은 것을 함께한 강아지인데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나 역시 10년 넘게 알래스칸 맬러뮤트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무슨 마음인지 너무도 알 것 같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도 그녀에게 화답하려고 (비록 12살에 38kg지만) 내 눈엔 영영 강아지인 내 새끼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 강아지 이름은 '커피'였는데, 내 강아지 이름도 커피에서 따온 이름이라 그 마저도 신기했다.



내가 그 카페를 방문한 바로 전 주 주말부터  버쌍에서는 우산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3일간 열리는 축제였는데 헤아려보니 내 생일에 시작해서 내가 한창 치앙마이 Sunday Market을 좀비처럼 걷고 있을 때 막을 내린 축제였다. 어차피 몰랐던 축제였지만 놓쳤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 축제기간 동안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몰리는데 카페 역시 손님이 많아 그녀도 지난 주말 몹시 바빴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카페를 방문한 바로 전날에 문을 닫고 쉬었고, 내가 방문한 당일도 카페를 열까 말까 망설인 날이라고 했다. 축제는 놓쳤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





 꽤 오랜 시간 앉아 있다가 사촌 동생과의 다음 일정이 있어 진짜 억지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오기 전 그녀에게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가까운 미래에 여기 다시 올 것 같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내가 다시 왔을 때 치앙마이의 히든 플레이스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쳐 이 말은 하지 못했는데,

치앙마이에서 내 케렌시아(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를 찾을지 꿈에도 몰랐다는 너스레 조금 첨가한 진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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