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사 10년 차가 입사 1년 차의 기록을 발견했을 때

by 앤디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 연휴, 작심삼일의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명절 기념 방청소를 했다. 충격적인 건 그 방청소가 (글을 쓰는 지금까지) 마무리되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란 사실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토록 미루고 미뤘던 거사(!)의 첫발을 떼었고, 80% 이상은 완료했다.
방청소를 하다 보면 내 의식의 흐름과 취향의 역사가 돋보이기 마련인데, 이번 방청소에서는 흥미로운 옛 기록을 발견했다. 일기라고 하기엔 짧고 낙서라고 하기에는 긴 기록이었지만 그 끄적임에는 작성 날짜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작성일은 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정확히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하고도 하루가 지난날이었다. 첫 줄은 역시나 '입사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직장에서의 미래를 생각하니 답이 안 나오고, 모든 것이 의구심 투성이라는 식으로 전개되다 '10년 후'의 나를 생각하니 끔찍하다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 '끔찍한 10년 후'인 오늘의 내가 이 글을 읽고 나서 든 첫 생각은 나란 인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든 두 번째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에 대한 생각이 거의 데칼코마니 수준인데)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었다.

이 부분만 부욱 찢어서 고이 접은 다음 버리면 안 될 서류로 분류했다. 방청소를 하면서도 그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10년 후의 나를 상상했을 때 '끔찍'하다는 부분이 완전히 뇌리에 박히었다.

입사 10년째가 돼가는 요즘, 회사와 그 안에서의 나를 정말로 끔찍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끔찍하다고 여기면서까지) 그간 스스로를 방치하고 학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겉으로는 친한 듯 지내면서 뒤에서는 욕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혐오해왔으면서, 내가 회사에 품은 감정과 실제 해온 태도는 그것과 뭐가 달랐을까. 등등

어질러진 방을 치우며 어지러운 내 정신도 정돈하고 싶었는데 9년 전에 쓴 끄적임으로 이렇게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이미 사안의 본질을 눈치챘음에도 바뀐 거 하나 없이 똑같은 자리에서 끔찍함을 정면으로 맞았다는 것은 회사만큼이나 내 문제도 큰 것이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아마 그때도 이런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접어버리고 어떤 다짐을 묻었을 것이다. 전문성이 없는 일을 하면서 10년간 시간을 축내 오히려 지금 그때보다 더 마음이 급하고 더 두려워지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10년 전 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이렇게나 맞는 것으로 판명 났으니, 오늘의 내 판단과 행동이 맞는 거라고 적어도 나 하나만은 내 편이 되어준다.

입사부터 오늘까지의 날을 헤아려보니 3613일째이고, 다음 달이면 진짜 10년이다. 그 날에는 '입사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났다'라는 따위의 글을 끄적이진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또다시 10년 뒤로 그 어떤 끔찍함을 유예하고 싶지 않다.

방청소하면서 발견했던 그 기록은 오늘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직장인의 10년 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