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기본적으로 일을 하는 곳이다. 이걸 누가 모르겠나 싶지만 회사에 다녀보니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일만 안 하는 건 그래도 양반인데, '일만 빼고' 다른 걸 다 하려 드는 사람은 진짜 최악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할 때는 소위 똥 밟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개 반드시 따라붙는 원 플러스 원처럼 자기 자신을 모른 채 남을 험담하기 바쁜 버릇마저 갖고 있다)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 어떤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여기처럼 어떤 자리를 꿰차거나 활개를 치는 일이 가능할까 싶다.
회사에서는 가치 판단일랑 깔끔하게 접어두고 내게 던져진 일만 하면서 지내려고 했는데, 본인 본분도 못하면서 입을 쉬지 않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니 요즘 들어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어차피 대다수의 직원 분들이 그 사람은 안 변할 거라 했고, 나 역시 인사이동, 퇴사 외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요즘 회사가 전체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바쁘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최근에 우리 지점으로 배치된 신입사원들에게 밥 한번 못 사주다가 저번 주 겨우 시간을 냈다.
이번에 우리 지점으로 발령받은 신입사원들은 어엿한 1년 차긴 하지만, 그동안 다른 업무를 배우고 해온 바람에 지점 업무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다.
그래서 지금 모르는 거 많겠다고 물었더니, 한 신입사원이 대답했다. 아예 백지상태라 본인이 뭐를 모르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말한 신입사원들은 위에서 말한 중간책임자 밑에 있는 팀원(?)들이다. 스멀스멀 본인이 해야 일을 신입사원에게 내리는 것도 눈에 보였는데,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본 업무조차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놓고 본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 인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수많은 잡담과 개인 통화 용무로 한참 딴짓을 하다 남들 퇴근시간에 일을 시작하면서 야근하느라 힘들다 한다.
그의 명성(?)은 수많은 선후배들에게 익히 들었던 바라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회사가 바빠지기 무섭게 그 명성을 목도하니 매일 매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고 (유독 큰 그 목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며칠 째 본인이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간다는 그의 무한반복 메들리를 듣고 나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신입사원들은 여전히 배운 게 없고, 전산조회를 해보니 실질적인 업무 진척이 없는데 대체 무엇을 하다가 12시에 퇴근한다는 건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밤 10시가 되면 내부 전산이 닫힌다. 우리 회사 업무는 90프로 이상 전산으로 하는 업무기 때문에 12시까지 있는 게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던 어느 날, 일부러 밤 10시까지 남아 일을 하면서 그분을 관찰했다.
일단 신입사원들과 야식 먹는데 한 시간을 보냈다. 밥은 먹고 일해야 하니까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리고는 본인 자리에 앉아는 있는데 시간이 흘러도 결과물이 쌓이지 않았다. 신입사원들은 각자 스스로 고군분투하는데 (일단 내가 퇴근했던 10PM까지는) 그 어떤 가르침과 배움의 광경이 펼쳐지진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본인이 일이 너무 많고 12시까지 일하느라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다.
회사 생활 10년 동안 조용히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수없이 봐왔는데, 진짜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
월급루팡에 허위 생색까지 장착한 신종 버전인 걸까.
회사는 무도회장이 아니고, 본인도 신데렐라가 아닐진대 (전산도 다 닫힌 사무실에) 굳이 밤 12시까지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
굳이 있고 싶었다면 본인 혼자 열고 본인 혼자 즐긴 무도회니까, 그런 건 혼자서만 소중히 간직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