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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와 맥도널드 가듯 회사 다닌 자의 최후

by 앤디


지난달 치앙마이 여행에서의 첫날, 나는 어떤 장면 앞에서 나의 고질병을 마주했다.

호텔에서 얼리 체크인이 안된다는 소리를 듣고 짐을 맡긴 후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나와 사촌 동생이 택한 치앙마이에서의 첫 끼니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식당의 현지 메뉴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간다 한들 쉽게 볼 수 있는 브랜드라 놀랄 것도 없었지만, 그 두 장소가 동시에 한 프레임 안에 담긴 건 처음이었다.

그 순간 옆에 있는 사촌 동생에게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됐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이렇게 호텔 가까이에 있으니 여행 내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월화수목금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던 업무 매뉴얼, 다람쥐 쳇바퀴처럼 의미 없이 굴러가는 일상, 그저 한 끼 때우려는 목적으로 자주 가는 회사 근처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이 모든 것이 지겹고 지겨워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지에서 '늘 먹어서 잘 아는 맛'을 보고 안도하는 내 모습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죽어도 음식이 입에 안 맞거나, 의사소통이 힘들어 음식 주문이 힘든 여행지에서 위 두 브랜드의 존재는 구원과 감사함 그 자체다)


하지만 이 곳 음식은 이미 내게 잘 맞는 것으로 판명난 태국 음식이었고, 여행지에서는 되도록 현지 음식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참 의미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도 나는 굶어 죽는 것까지 운운하며 스타벅스와 맥도널드의 존재에 안심했다.







여행지가 아닌 평소 생활에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는 우수한 접근성 때문에 실제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굳이 노력해서 찾아 헤매지 않아도 내가 돌아다니는 동선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보이는 곳들이 바로 저 두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소름 끼치게 맛있는 맛은 아니라도) 내가 지불한 가격에 내가 아는 맛을 기복 없이 내어주니 돈 쓰고 실패했다는 기분을 절대 들게 하지 않는다는 점도 자주 가는데 한몫하는 요소다.

하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다.

편하고, (비교적) 실패 없는 그게 다다.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스타벅스와 맥도널드에 방문해서 뭘 먹은 것이 특별한 이슈가 된 적은 없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내가 10년 전 직장을 택했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하고 싶어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는 대단한 입사동기와 사명감이 있는 것인 양 거짓부렁을 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집에서 가깝다는 물리적 편함, 경쟁과 실패를 운운할 일이 없어 보이는 속편함 그게 이 회사에 입사한 가장 큰 이유였다.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상상도 못 했던 다른 차원의 고충이 있긴 했지만) 내가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를 자주 이용하는 이유는 회사를 지금껏 다녔던 이유와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나만 크게 욕심 안 부리면) 편하고 (비교적) 실패가 없는 것.


그런데 나는 왜 편하려고 선택했던 곳에서 이제와 새삼 이토록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이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감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첫 날 봤던 스타벅스와 맥도널드에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곳이 아니어도 갈 곳은 많았고, 당연히 굶어 죽지도 않았다. 무엇을 먹고 마시든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고, 실패했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이제 이런 접근 방식으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아니 제2의 일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편함'과 '실패'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10년 새 이토록 몰라보게 변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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