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주요 화제가 아닌 스치듯 들은 말인데 며칠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주위를 맴도는 말들이 있다.
최근에 들었던 말 중에 그런 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저, 본업은 따로 있어요."라는 말이었다. 한창 그분의 본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화가 끝나갈 때쯤 본업이 따로 있단 말을 들으니 벙쪘던 것이다.
(본업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지만) 나는 현재 다니는 직장을 생계를 위한 직장이라고 생각할 뿐 심정적으로 본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분은 누가 봐도 본업같이 보이는 일을 본업이 아니라고 하더니 진짜 본업은 따로 있다고 하니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업의 의미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본업이 따로 있다 말할 때 그분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퍽 인상적이어서 이것이 말로만 듣던 flex인가 싶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는 시대적 상황이 아니라도 나 역시 오늘의 직장이 내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회사의 이름을 지우고 나면 '업' 그 자체로서 논할 거리가 별로 없다. 어쩌면 내가 (직장이 있어야만 실체가 있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 '본업'이라는 말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 때는 내가 어디의 누구인지가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 보니 그 '어디'는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와 소개팅에 나갔을 때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지만, 점점 커져가는 내 마음속 구멍을 메꾸기엔 늘 역부족이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남들과 달랐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내 것에 따라 결정을 하고 책임졌어야 했는데... (다른 건 참 내 멋대로 잘도 저지르면서)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남의 목소리를 졸졸 쫓아가기 바빴던 것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행동을 해태한 대가를 뼈아프게 치르며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요즘 내가 하는 짓이란 대개 이렇다.
현재 처한 내 처지를 파악하고, 오래 품어온 내 욕망을 살피면서 내가 어떨 때 온갖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내가 어떨 때 모든 사기가 꺾이는지를 곱씹는 것이다.
그런 다음 본업으로 삼고 싶은 것에 매일 야금야금 조금씩이라도 다가간다. 너무 당연하게도 아직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는데,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본업은 영영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결과물이 있기 전까지) 어딜 가든 내 미래의 본업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각오하고 있다. (뭐가 됐든 마음의 구멍이 커질 대로 커져 내 자체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덜 무섭다)
무슨 무슨 회사의 김대리 말고 저 사실 '본업은 따로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내게도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