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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삼재 같은 어떤 경험

by 앤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일이 안 풀린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훅 들어온 묵직한 한 방에 이미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동서남북 상하좌우에서 잽들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느낌.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부터 (나 보란 듯이) 제일 먼저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기분.

뭐 이런 느낌과 기분이 한 3년간 쭉 지속되었는데, 대체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고난일까 고민 끝에 찾아낸 최선의 합리적(?) 의심이 마침 내가 삼재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작년이 바로 그 삼재의 마지막 해였다. (물론 삼재가 풀린 뒤로도 그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삼재가 지난 탓인지, 그 시간들을 버티면서 마음의 맷집이 단단해진 건지 예전보다는 의연해진 나를 발견할 때면 삶의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굳은 살을 다시금 실감한다.







나는 그거 뜨거워, 손 다쳐! 란 소리를 듣고도 굳이 내손으로 만지고 데인 뒤에야 아 진짜 뜨겁네 하는 편이다. (시간과 돈, 에너지가 허용되는 범위에서) 간접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을 선호하다 보니 아무래도 데인 후 트라우마에 대한 자가치료시간도 많이 걸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이든 된장이든 몸소 겪고 나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어떤 경험이든 그것의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서도 집착한다. 자처했든 자처하지 않았든 모든 경험은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데, 어떤 경험에 의미를 붙여주면 그에 따른 흔적도 가치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험들 중 요즘에는 회사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되돌아보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 생활을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회사를 들어온 거 까지는 내 선택이 맞았지만, 여기서의 경험은 대부분 생각지 못했거나 타의로 이뤄진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10년을 다녔는데 어떻게 매번 안 좋은 일만 있었겠나 하다가도 좋았던 경험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당했지? 종국에 왜 이런 꼴을 보고 앉았지? 하는 것이 대다수다.

그래도 회사에서의 10년 세월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아서 억지로 쥐어짜 낸 의미가 하나 있긴 하다.

바로 돈 버는 것과 세상살이에 대한 쓴 맛을 터득했다는 것인데 이 또한 빈약하기는 매한가지다. 굳이 이걸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방식으로 겪었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샘솟기 때문이다.

경험 지상주의인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하나 있다. 한상복의 배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들 합니다.
첫 번째는 사색하는 길인데 이것은 가장 높은 길이죠.
두 번째는 모방으로 다가서는 방법인데 가장 쉽다고들 합니다.
마지막은 경험에 의한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죠.


회사에서의 온갖 경험이 어떤 '진리'에 이르는 길이었는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아마 그 진리는 여기를 완전히 떠나고 나야 그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고통스러운 길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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