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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20. 2020

불혹을 앞둔 딸과 이순의 부모님


오늘은 월급날이다. 이 날에 대한 감흥은 꽤 오래전에 사라졌다. 다만 이번 달의 월급만큼은(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계산됐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몇몇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달았었다.

 내 신상에 관하여 집에서 말을 잘 안 하는 편인 나는 어린 시절 엄마를 답답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고 한다.

 아무도 강요한 적이 없었는데 혼자 장녀 콤플렉스를 앓고 있었던 건지 집에서 나에 대한 뭔가를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내 약한 모습을 부모님께 내보이는 걸  무척 싫어했었다. 대신 친한 친구들한테는 참을 수 없이 사소한 나의 일상, 뿌듯함과 보람, 옹졸함과 분노, 아킬레스건과 치부 기타 등등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요 몇 주 막장드라마 같은 일들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되자, 매번 친구들에게 배경 설명을 하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큰 위안이 됐었는데 그게 안되자 나는 예전에 잘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바로 퇴근 후 집에 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님께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게 된 것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참기 힘든 건 또 처음이었다.


 두 분 다 폭주하는 내 '화'를 경청해주시는데, 사실 두 분의 결론은 늘 싱겁게 끝이 나고 만다.

 
 아빠는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하시고, 엄마는 너를 인간 만들기 위한 시련이라고 하신다.


 아 저 또 김새는 말씀... 이시구나 하지만 돌아서서 곰곰이 생각하면 결코 틀린 말씀 아니다. 살면서 나 역시 시간의 위력을 실감한 일이 많았고, 살수록 어려운 이 세상살이에서 내가 덜 된 인간이라는 것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쑥과 마늘이 하필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캐릭터들과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건지는 몰랐다. (쑥과 마늘맛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건 참 쓰디쓰다)




 나는 낼모레 마흔이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을 코앞에 둔 것이다.

나는 공자님이 아니니까, 지금보다 몇 년 지났다고 해서 정말 저렇게 될 거라고 믿진 않는다.

 

 다만 지금처럼 이런저런 일을 당하다 보면, 세상일에 덜 정신을 빼앗기고, 판단을 흐리는 일이 적은 불혹이 돼있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두 분 모두 60대,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나이. 이순이 지난 분들이다.

 그러니 이순의 두 분 말씀을 한 번 더 믿어보고, 오늘만큼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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