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Jan 07. 2020

더 이상 속고 싶지 않을 뿐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데 특히 20~30대가 다른 연령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사했다는 스트레스 인지율은 평소 일상생활 중에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느끼는 분율을 말한다고 한다. 조사 결과 젊은 층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높았는데 20대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37.9%로 가장 높았고, 30대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36%였다. 신문은 젊은 층일수록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취업, 결혼 등의 문제로 2030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봤다.

 내가 조사 대상자였어도 (너무 당연히) 30대의 스트레스 인지율을 높이는데 일조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취업해서 10년째 회사를 다니고, 쓰라린 이별 끝에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접은 지 오래된 30대인데 이런 나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힌트는 내가 위 기사와 함께 싹둑싹둑 오려낸 다른 신문기사들에 나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오려낸 신문기사들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상급자 갑질 유형 가운데  '불공정한 근평'을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라든지, 2018년 말부터 2019년 9월까지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된 113명 중 절반에 가까운 55명이 이른바 '캠코더'인사(캠프, 코드, 여당)인 것이라든지,  공공기관 361곳의 여성 고위직 수를 전수 조사한 결과 기관장이 여성인 곳은 34곳 (9.4%)에 불과하여 공공기관의 '유리천장'실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기사들이었다.


이런 신문기사들을 굳이 오려서 보관까지 한 나의 심리상태를 나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다 이런 거니 나도 별 수 없다는 하향평준화 적 자기 위안, 내 지난 선택에 대한 자조, 내가 발 담근 곳에서 실제 벌어지는 것들에 대한 나만의 조롱... 아마 이 모든 것들이 뒤범벅된 것 같다.

 사실 난 얼마 전까지 TV 뉴스를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는 것을 엄청 꺼려온 사람 중 하나였다. 일단 재미가 없었고, 안 그래도 답답한 세상 부정적인 뉴스와 기사가 지배적인 미디어를 굳이 챙겨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생각하니 오늘날의 내 비극이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 것 같다...) TV와 신문 속 기사들이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등한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찬찬히 신문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 왜 그토록 어른들이 신문을 읽으라고 했는지 깨닫는 중이다. 신문 읽는 습관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지금 당장 어떤 이슈에 대해 거시적인 접근을 할 줄 모르고 냉철한 눈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내 주변에서 어제, 오늘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신문에서 찾고, 내일과 모레 나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준비의 가닥을 신문을 통해 잡으려 하고 있다.







 나를 속인 주체는 분명치 않은데, 한동안 속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해 꽤 긴 시간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뭐가 됐든 이제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
그 주체가 사람이든. 돈이든. 정책이든. 세상이든.

그래서 일단 오늘도 신문을 읽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닭집과 뉴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