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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7. 2019

통닭집과 뉴트로


 한 두 달 전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지점 후배와 함께 전철을 탔다. 후배는 평소 흥미로운 영상이나 뉴스가 있으면 나에게 링크를 공유해주는 그런 친구다. 그날은 바로 옆에 있는 내게 '대리님, 음악 좋아하시니까 집에서 심심하실 때 틀어놓으세요' 하면서 온라인 탑골공원이란 채널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유튜브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채널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다. 전철에서 3분에서 5분 정도 빠르게 넘기며 후배와 시청했는데, 내게는 너무 친근한 영상들이 쏟아졌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패션과 올드한 춤 동작. 내가 진정 잘 아는 가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옛 노래를 들으니 정말 반가웠다. 그러면서 한편 저 영상들 모두 내겐 너무 생생한 추억의 한 페이지인데 채널 이름이 탑골공원이라니 뭔가 좀 서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리기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번 주 나는 상당히 뉴트로적인 통닭집에 다녀왔다. 우연히 통닭집 사장님의 프로젝트와 그 취지를 알고 크게 공감해 일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아직 통닭을 먹기 전인데 통닭집이 위치한 장소 때문에 이미 흥분의 상태였다. 이 동네는 나의 십 대 시절을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내게는 아주 의미가 큰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이 청춘남녀인 시절 이 근방 신포동에서 데이트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인 나와 내 동생은 이 동네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나기만 하고 정작 이 동네에서 산 적은 없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브랜드 청바지를 여기서 샀고, 힙합패션이 한창 유행한던 때 (두 명이 들어가도 될 것 같은) 후드티와 카고 바지를 여기서 처음 샀다. 학창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항상 이 곳 시장에서 친구들과 닭강정을 사 먹었고, 똑 단발 여중생으로 처음 순정만화책을 집어 들었던 장소도 여기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의 추억 중 최고봉은 땡볕이 내리쬐던 여름날, 나의 영원한 오빠인 숯검댕이 눈썹 송승헌 오빠의 사인을 받기 위해 신포동 거리 292513 스톰 매장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결국 그 고귀한 필적을 쟁취한 일이다. 즉 이곳은 내 고향 인천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정하고, 격하게 아끼는 그런 동네다.





 회사 동아리 회원들과 먹어보고 싶은 메뉴를 잔뜩 시키고 한 상을 벌렸다. 시원한 생맥주에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입에 넣으니 기분이 업되서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한창 치킨을 뜯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통닭집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 또한 내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내 몸이 기억하는 리듬과 내 영혼이 외우는 가사를 탑재한 노래들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특히 H.O.T 의 행복이 나왔을 땐  2차로 혼코노라도 강행할 정도의 텐션이 되었다. 통닭집에서 입과 눈과 귀가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마음까지 즐거울 줄은 몰랐다. 이래서 뉴트로, 뉴트로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올 때쯤에는 영턱스클럽의 '정'이 들렸다. 가사가 다 들리는 인간적인 랩과, 노래의  시작과 끝을 장악하는 딸꾹질 비슷 무리한 특유의 추임새는 꽉 붙들고 있던 내 어깨를 결국 들썩거리게 하고 말았다.


 통닭집에서 나오면서 필이 제대로 꽂힌 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 회원들에게 얼마 전, 슈가맨에서 태사자 나온 걸 봤냐고 물었다. 특히 아~예 '태사자 인 더 하우스' 이 부분을 들을 때 나는 너무 벅찬 나머지 눈물마저 흘릴 뻔했다며 오버를 해댔다. 마침 92년생 신입 직원이 보여, 흥분해서 혹시 태사자의 도 아니? 하고 물어봤다.  후배가 잠깐 생각하다가 아...'들어는' 봤어요.라고 대답했다.


 

 멀리 또 멀리, 너무 갔단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 동아리 모임 땐 노래방 회식을 기획해서 탑골공원과 밀레니얼과의 배틀 한번 마련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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