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Dec 13. 2019

그 많던 상처 회복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카페 밖이 보이는 창가 쪽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이어폰을 뚫고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카페에 비치되어 있었던 판매용 스노볼을 만지려는 두세 살 돼 보이는 아이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예닐곱 살로 보이는 그 아이의 형아가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가 주문한 음료를 받는 틈에 벌어진 꼬마들의 실랑이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꽤 컸기 때문에 나는 읽던 책에서 아이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졌다. 그러다 그 아이가 카페 앞의 차에 탈 때까지 쳐다보게 되었다. (내가 앉은자리가 바로 통유리창 앞이었기 때문에 저절로 보이기도 했다)


 그 아이가 아장아장 잘 걷다가 뭐에 걸렸는지 갑자기 넘어졌다. 카페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이번엔 넘어져서 아프기까지 하니) 얼마나 더 크게 울까 싶어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 엄마와 지나가시던 행인 아주머니가 일으켜 세워 무릎을 털어주니 아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두세 살 아이들의 의젓함을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나 싶다가, 내게도 있었을지 모를 저 귀여운 의젓함이 언제 내게서 도망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며칠 전 가족 단톡 방에 올케가 사진 두장을 올렸다. 사랑스러운 둘째 조카의 사진이었다. 사진 두장 전송 뒤 곧바로 올케의 멘트가 이어졌다.


'뒤집기 성공'

사실 저번 주에 동생으로부터 둘째 조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기가 감기에 걸렸는데, 그 감기약 항생제 때문에 설사까지 하는 바람에 많이 운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계속 걱정하고 있었는데  뒤집기에 성공해서 웃고 있는 둘째 조카를 사진으로 보니 고모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4개월 갓 지난 조카가 아픈 와중에 뒤집기까지 성공했다니 그게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올케가 순간 포착을 잘한 건지 사진 속 조카의 표정이 본인의 뒤집기 성공에 스스로 뿌듯한 표정이었다. 사진을 받은 이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진을 열어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있었을 저 많던 상처 회복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를 직접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이번 조카의 뒤집기 성공이나 카페에서 만났던 아기의 일을 볼 때 아이들의 상처 회복력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픈 와중에도 뒤집기를 시도하고, 넘어져도 툭툭 일어나서 가던 길 가는 건 (아이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누구한테 배워서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놀랐던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상처 회복력이 느려 터진 한 사람으로서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제 도저히 아이라고 할 수 없는 빼박 어른인 나는 상처에 몹시 취약하다.

상처를 받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이고, 받을 거 같은 일은 미리 도망치거나 덜 받을 궁리를 한다. 그래도 못 피하고 받았을 땐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건이든) 내가 받았던 만큼 꼭 되돌려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되게 어른인 척 굴다가도 상처에서만큼은 유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받은 이후에는  (상처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회복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괜찮아지는 것 자체도 더디지만 진짜 회복한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더 많다.

길을 걷다가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두세 살 아이의 의젓함.
몸이 아파도 아등바등 뒤집기에 성공한 4개월 아기의 기특함.



 누가 가르쳐준 적 없어도 이미 갖고 있었던 그 상처 회복력들은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다 소진해 버린 걸까. 그런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