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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23. 2020

치앙마이 7일 차, 오늘 나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머물기



치앙마이 7일 차, 치앙마이 일주일 머물기의 마지막 날이다.


 일상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언제부턴가 시간은 참 빨리도 흐른다. 호텔과 공항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적어도 비행 출발 두 시간 전에 가서 체크인해야 할 것을 감안하면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뿐이었다. 조식을 먹고 사촌 동생에게 각자의 시간을 가진 뒤 호텔에서 다시 만나자 했다. 사실상 카메라와 핸드폰만 챙겨 들고 무작정 호텔 주변 큰길과 골목을 돌아다녔다. 치앙마이에 머문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치앙마이의 공기, 바람, 햇살 모든 것들이 내게 앞다투어 매력 발산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차를 타고 몇 번 지나쳤던 곳들을 일부러 걸어서 찾아가기도 했는데 차 안에서 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분명 같은 장소인데 전혀 다른 풍경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차에서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갔던 장소나 여럿이 함께 가서 제대로 보지 못한 장소들을 기억했다가 걸어서 혼자 다시 가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한 번 가서 맘에 들었던 도시나 시간이 부족했던  도시는 다음 여행에 또 가고 또 가기도 한다.




걷다가 잠시 멈춰서 사진 찍고, 그러다 다시 걸었을 뿐인데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 시간 넘게 걸었을까, 커피는 꼭 저기서 마셔야지 즉흥적으로 결정한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페 내 에어컨 바람을 쐬니 콧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작년 12월 거의 한 달간을 기침과 감기로 고생했다가 겨우 나아서 따뜻한 나라로 도망치듯 왔는데 여행 중반쯤 다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뭔가 잘해보려고 했던 일들, 내게 이로울 거라 했던 선택들이 나를 함정에 빠지게 하거나 회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주기 시작했는데 콧물을 한창 닦다 보니 이번에도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서글퍼졌다.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 거리며 여행 내내 내 마음에 걸려있는 화두들을 내 면전에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보험이 확실히 들려있는 몇 박 며칠의 이런 감질난 일탈은 이제 내게 더 이상 약발이 없다는 것을 치앙마이에서 확실히 인정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냥 비겁한 유예에 불과한데, 모양새 좋은 힐링 여행으로 둔갑시켜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특히 치앙마이 5일 차의 그 하루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날 밤 나이트 사파리에서 나는 왜 그리도 사파리 속 동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서글퍼했었는지가 첫 물음표였다.

 지나치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 제때에 주어지는 먹이, (그런 종류의 보호가 체질이라면) 천적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먹이를 찾아 나설 생고생도 필요 없으니 모든 것이 땡큐 베리 머치다.

 그런데 동물원 생활이 체질이 아닌 야생 동물들은 어떨까. 동물원의 생활에 오래 젖어있던 동물들은 다시 야생으로 떠날 수 있을까. 내던져지면 죽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 살아남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니 어찌어찌 될까.



치앙마이 5일 차 낮에 만났던 버쌍의 카페 주인이 10년간 해온 일을 접고 카페와 여행 가이드를 한다 했을 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는 그 모습을 나는 왜 그리도 부러워하고 감탄했을까. (이것은 두 번째 물음표였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칼같이 보험을 해약하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가 싫어져 가슴이 턱 막힐 때쯤 콧물이 너무 흘러 코도 막히었다.

카페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더 쐬면 이래저래 죽을 것 같아 카페를 나왔다.




 결국 나는 그 어떤 물음표도 명쾌하게 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년 동안 여태 답을 못 찾은  질문들을 치앙마이 꼴랑 7일에 해결되길 바라는 건 가당치도 않은 욕심이긴 했다.

 다만 나의 화두가 좀 더 구체적이고 가시화되어 진짜 내 목을 조르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머물기가 좋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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