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 없다. 회사에 대한 주인 의식 또한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위 두 가지의 아류라 불릴만한 감정이 조금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10년 회사생활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사실 내게 저 두 가지는 일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것들은 나의 조직 생활(?)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명감과 주인의식은 조직이 원하는 것과는 늘 다른 형태와 방향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좌절감과 허탈감을 겪고 나서 나는 정말 빠른 속도로 저것들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월급을 받는 근로자로서 월급값은 하고 회사 다니자는 개인적인 상식선, 내게 맡겨진 업무와 나의 생산성에 대한 자기 검열과 개선 이 두 가지 정도가 내가 회사원으로서 견지하는 '의식적'인 태도의 전부다.
(본인 능력과 근태에 대한 현주소를 모르고) 되려 실체 없는 사명감과 주인의식을 남에게 운운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선량한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실무자들의 업무 효율성을 저해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던 탓일까. 참 좋은 의미를 가진 저 말들은 언제부턴가 내게는 경계하고 의심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저번 주 수요일, 경영지원본부의 본부장님으로부터 회사 전화가 아닌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참고로 전화를 주신 본부장님은 내가 신입 때 지점에서 차장님으로 모시고 계셨던 분이다. 그 뒤로 대리와 지점장으로도 만나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분인데 내가 회사에서 상사로 존경하는 유일한 분이기도 하다. 그 존경심에 비해 늘 본부장님께는 유독 업무적으로 부족한 모습만 보인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그런 분으로부터 갑자기 평일 근무시간 중에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니 반가움과 동시에 덜컥 긴장이 되었다. 본부장님은 내게 편한 시간이 언제냐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셨다. 본부장님께 무조건 시간을 맞추겠다고 대답을 드리고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힌트 좀 달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 지점에 대한 상황,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나의 개인적인 이슈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셨다.
업무를 마치고 본부장님이 계시는 본점 근처 대형 쇼핑몰의 한 카페에서 본부장님을 뵈었다. 대화의 주요 내용은 요즘 회사 내의 문제적(?) 지점으로 떠오르는 우리 지점의 현 실태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본부장님은 이미 많은 것을 예상하고 있으셨고, 파악하고 계셨다. 특히 내가 그 문제의 중심에 있는 상사 중 한 명과 직접적으로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본부장님은 내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요즘 나의 허심탄회한 심정, 생각 등을 내보이는 자리기도 했지만 본부장님의 업무, 그 위치에서의 고민과 시선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본부장님의 업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자, 나는 무엇보다 본부장님의 스트레스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회사에서 받는 그 온갖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시냐고 여쭤보았다. 본부장님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시며 "음악 들어요."라고 대답하셨다.
책 읽는 것과 음악 듣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음악으로 해결될 스트레스가 아닌 것 같아 다시 한번 괜찮으신 거냐고 여쭤보았다.
안 그래도 퇴근 후든 주말이든 댁에서 온종일 음악만 듣고 있어서 사모님으로부터 핀잔을 듣고 계시긴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으로 치유받고 계시는지 더 여쭤보진 않았지만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요즘 출근길에 집요할 정도로 반복해서 듣는 곡들이 있다. 그 노래들이 내 출근길 BGM이 된지는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그 고마운 노래들은 Aerosmith의 Rag doll과 JP Saxe의 If the world was ending이다. 하나는 운전하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됐고, 하나는 점심시간에 국밥집에서 순대국밥을 먹다가 듣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우연을 몹시 좋아하는데) 여하튼 이 두 노래는 요즘 내가 출근할 때마다 듣고 있는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을 플레이하고 걷다 보면 내가 출근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곤 한다.
본부장님은 나와 대화하는 두 시간 내내 사명감과 주인의식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나도 모르게) 본부장님께 두서없는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맡은 일을 책임 다해서 다 하겠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다짐성의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