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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열정을 품는 게 가능할까

by 앤디


직장에서 열정을 품는 게 가능할까.



내가 즐겨보는 미드 Bones의 한 대사다.

그 회차의 에피소드는 가물가물한데 이 대사만은 머리에 남았다. 아마 내겐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저 대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 직장에서나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저런 예가 있었던가.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며칠 전, 최대리와 회사 메신저로 업무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살짝 번졌는데 새삼 조직생활에 대한 적성 문제였다. 우리 둘 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 없었다면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 하며 회사에 잘 다니지 않았겠나 하는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최대리가 김대리는 조직생활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다소 불합리해 보여도 조직이니까 따라야 할 것들이 있는데 김대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주어진 것을 따르는 것보다 스스로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음... 대부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조직 생활에 대한 적응과 뭔 상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대리의 말에 문득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수학만큼이나 국사를 싫어했었다. 그래도 성적은 신경 쓰여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들었다. 국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두 분이셨는데, 그분들에 대한 친구들의 평과 나의 평은 엇갈렸었다.


한 분은 목소리가 작은 편에 물 흘러가듯 줄줄줄 설명을 하는 편이셨고, 다른 한 분은 큰 목소리에 중요한 것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분이셨다. 특히 후자의 선생님께서는 교과서 어디에는 네모 박스 표시를 하고, 어디에는 별을 날리고 꼭 외워야 할 부분은 다 같이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치도록 시키는 분이었다. 아직도 반 전체가 사림, 사림을 외쳤던 기억이 생생한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분 수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좋아했었다.


그런데 나는 완전 정반대였다.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시려는 그 뜻은 알겠으나, 어느 부분에 어떤 표시까지 하라고 지정해주시는 것이 굉장히 숨 막혔고, 조용히 수업을 듣고 싶은데 다 같이 똑같은 말을 외치라고 시키시는 것도 정신 사납고 버거웠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사림을 외친 건 기억나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줄줄줄 읽어나가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신 국사 선생님에 대해서는 반 친구들의 혹평이 많았다. 졸리다든지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겠다 등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줄줄줄 듣다가 이게 중요한가 보다 내 맘대로 체크하는 그 수업 방식이 훨씬 맘이 편하고 집중이 잘 되었다.

전자의 선생님 수업 방식이 내게 좀 더 맞는 방식이고 후자 선생님의 수업 스타일이 좀 힘들었다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그때 선생님이 중요하다 강조하시는 그 내용 자체에는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다만 지금, 최대리의 말대로 (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따르지 못하는 내가 왔다 갔다 하는 회사 기준 자체에 의구심마저 품고 있으니 조직생활에 대한 적응은 애초에 튼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직장에서 열정이라니.

아무리 봐도 내겐 너무 멀고도 먼 얘기이자, 이 생에선 영영 허락되지 않을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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