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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꽃과 루이뷔통 카드 지갑

by 앤디



어제 아침 출근길에 개나리꽃이 폈다는 걸 눈치챘다.

최근에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마다 부쩍 따뜻해졌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역시 꽃이 얘기하는 계절의 변화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바삐 걷던 길을 멈추고 개나리꽃을 핸드폰에 담았다.


요즘 나의 마음이 궁색하고 또 피폐하다는 걸 그 어느 때보다 알고 있어 그런 나를 바라보는 마음도 좋지 않았는데, (아직까지는) 가던 길 멈추고 꽃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어제는 내가 담당하는 업체 고객 한 분이 서류를 재작성해야 해서 사무실에 방문하였다. 한 10분가량의 서류 작성과 설명이 끝나자, 갑자기 그분이 가만있어봐 하시더니 쇼핑백에서 은행용 돈 봉투를 꺼내셨다.

놀라지 마, 이건 돈 아니야 하시며 봉투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내게 건네주셨다.

너무 친절하고 싹싹해서 주고 싶어, 이거 튼튼하고 좋아.

고객이 내게 주신 건 내구성보다는 브랜드가 강조되어야 할 것만 같은 루이뷔통 디자인의 카드지갑이었다. (사실 고객님의 핸드폰 케이스 디자인도 루이뷔통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문양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


쇼핑백, 더스트백, 상자, 개런티 카드를 동봉한 것이었다면 정색하며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다 구겨진 은행 봉투에서 나온 카드 지갑이라 잘 쓰겠다며 감사히 받았다.

인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이번에는 또 보온병을 꺼내시더니 종이컵 있냐고 물어오셨다.
아, 뭐 드시려고요? 하고 가져다 드리려는데 이거 내가 코로나 예방하려고 어제 밤새 달인 차인데 좋은 거 다 들어갔어. 한 잔 주고 싶어. 하시는 거였다.

계속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민망해하며 컵을 가져다 드렸더니 정성스럽게 따라주시면서 뒤에 있는 저 양반도 드려야겠다 하셨다. (뒤에 있는 저 양반은 지점장님이었다)

그분은 나와 지점장님께 귀한 차를 따라 주시고, 내 명함까지 챙기시고 난 뒤에야 사무실을 나가셨다.






내 책상으로 돌아와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카드 지갑을 만지작 거리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우리 부모님보다 연배가 많으신 분이었는데 기분 좋게 일을 보고 돌아가신 것 같아서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아침 출근길 개나리꽃의 영향이었는지, 고객이 주신 따뜻한 차 때문이었는지 사무실에서는 통 몰랐던 봄기운을 느꼈다.


그나저나 이 카드 지갑 정품이면 어떡하지. 설마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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