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장인의 흔한 주말 그리고 퇴근길

by 앤디


요즘 혼술 하는 일이 잦아졌다.


2주 전 주말에는 술안주 메뉴 몇 가지를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음식 맛에 대한 의구심으로 평소 간편 조리식품을 잘 먹지 않았다가 그 편리함과 유용함에 상당히 감탄했다. (심지어 맛도 나쁘지 않았다) 막 데운 불막창과 주꾸미 볶음에 (어울리는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와인을 곁들여 보았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안주로 고른 음식 모두 '씹는' 식감을 자랑하는 것들인 건 뭔가(?)를 잘근잘근 씹고 싶은 무의식의 반영인건지도 모르겠다.

현재 직장과 나만 빼면 이 세상 예상치 못한 모든 조합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건가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한 편 그날 오후에는 친한 언니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언니가 보내준 건 캐주얼한 성격 유형 테스트였는데, 받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워해 보았다. 재미 삼아 시작한 거 치고는 모든 질문에 정색하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서일까. 그 테스트는 나에 대해 꽤나 정확한 분석을 내려주었다. 혹시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싶어 측근들에게 (이게 정말 나냐는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결과를 공유했더니 이거 완전 너네 하는 답이 돌아왔다.

측근 및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테스트 결과가 정말 일치하다면 나는 하루빨리 회사를 나가야 마땅했다. 테스트 결과의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내가 여기에 있는 건 회사와 나 서로에게 비극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 기생충은 보지 못했지만) 한 동안 TV에서 "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그래, 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건 정말 벅차고 멋진 일이야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간다는 건, 그 결과를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용기와 도전이 더 빛이 나는 것이라며. 그래서인지 봉 감독의 어려웠던 시절을 언급하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 내 안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즈음 터진 코로나 사태는 퍼지는 속도와 그 양상이 날로 심각해졌다. 나의 현업은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매일매일 출근할 때마다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일의 절대량이 늘고 야근이 잦아지는 것보다, 월급쟁이 바깥의 리스크에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도 추가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안 그래도 회사 밖 온도에 대해 암암리에 간을 봤던 내가 영영 여기에 발목 잡힐 핑계를 스스로에게 부여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나는 어째야 할까...

설상가상으로 회사 (특히 회사 사람들)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바빠지면서 극에 달하고 있는 중이다. 일이 단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극도로 선명해졌다. 안 그래도 체계 없었던 조직의 주먹구구식 민낯은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마음에 천불을 질렀고, 내가 일하는 지점의 몇몇 책임자들의 무능과 깜냥의 바닥을 확인하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장으로 인해 직원들에게 쏟아지는 불필요한 업무와 수준 낮은 상황들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 모습도 점점 후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번 주말에는 전 직원이 출근을 강요당했다. 겉으로는 제안이고 독려였지만, 10년 차 짬의 바이브로 판단했을 때 사실상 지시에 가까웠다.

나는 평일 내내 아침 일찍 출근했고, 밤늦게 퇴근했기 때문에 주말에 출근할 그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설사 조금의 에너지가 남아있다 해도 어설프게 주말에 나가서 그다음 주 평일의 컨디션을 저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말출근에 대한 얘기를 들으신 엄마는 네가 일찍 나간다고 알아주는 사람 있냐고 너도 주말에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신입 시절 주말 출근의 비효율성에 대해 몸소 체험한 나는 주말에는 푹 쉬어야 한다는 주의라 결국 나가지 않았다.

실제로 평소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주말에 출근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저것 눈치 보느라 억지로 나와 성의표시를 한 직원들의 얘기도 들렸고, 평일에 전혀 자기 몫을 하지 않는 엉뚱한 자들이 와서 주말 출근을 티 내고 밥까지 먹고 갔다는 얘기도 들렸다.
솔직히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알려 주고 들려주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조직 부적응자로 보이듯, 내 눈에는 저런 자들이 참 신기하고 놀랍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또 실감한다.

지난 어느 평일날, 야근을 하고 지친 몸으로 지하철 계단을 걸어 올라와 밤하늘과 가로등을 보는 데 그날따라 코끝이 찡하였다. 평소에 여유로운 적도 많았으니 일이 많아져 힘든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삶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의문들이 밀려왔다.

으리으리한 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계속해서 내 안의 무언가와 실제 현실이 어긋나고 잘못돼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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